아뜰리에 에르메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시체안치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차가운 금속 판 위에 뜬금없이 무가 올려져 있었다. 매끈한 도자기 형질로 만들어진 무였다. 그 아래에는 곰팡이가 핀 것인지, 썩어버린 것인지 누렇게 변색된 모양의 작대기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액체를 그대로 굳게 만든 것 같은 알 수 없는 형체가 붙어있었다. 이 해괴한 조합 말고도 공간은 이미 알 수 없는 물체들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꽃들이 수놓아진 족자에 붙어있는 파리채들, 과학 실험실에서나 볼법한 뇌 모형과 콩팥 모형, 그리고 사람의 치아 모형이 길고 하얀 기둥에 붙어 있고 그 아래엔 매실주를 담글 때나 쓸 것 같은 투명하고 커다란 통이 붙어 있었다. 도록에 실린 글 그대로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의 작업실을 보는 것 같았다.
작품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물건들이 제각기 이상한 위치로 붙어있었다. 의미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원하는 지향점이었다. 작품은 키치하고 팝아트적이다. 그들이 미술을 탐구했던 시기와 현대까지, 미술사가 그대로 연결되는 듯했다. 작품의 의미가 해체되고 그것이 무엇인지 의미를 물었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예술가들이 예술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들이 현대까지 흘러 와 더욱 발전된 의미로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이 묘한 엇물린 사이에서도 유독 차가운 금속판 위에 올라간 무가 어른거려서 근처에 서 계시던 도슨트 분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이 무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아래에 있는 저 갈색의 낯선 모형은 뭔가 폐 같기도 한데. 갑자기 무가 이 위에 올라가 있는 게 궁금해서요. 시체안치실이 생각나서 정말 시체나 혹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내 물음에 도슨트 님은 빙긋 웃으며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무가 정말 독특하죠. 다른 분들도 유독 이 무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 아래에 있는 모형은 사실 파슬리랍니다. 곰팡이가 생겨 썩어버린 파슬리예요. 맞은편에는 배추도 있죠. 이게 채소 시리즈인데요, 이번 전시 제목이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죠. 작가님들은 '파라다이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풍요로움, 즉 싱싱한 채소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채소가 유전자 조작도 이루어지면서 어찌 보면 온전하고 본질적인 우리가 알던 채소의 형태와 벗어나게 되었죠. 그래서 보면 채소가 비정상적으로 커요. '파라노이아'라는 과대망상, 어찌 보면 편집증적인 현실을 빗대어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죠."
도슨트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질문을 두 어개 더 이어 나가다 결국 내 마음속에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고 말았다.
"혹시 도슨트 님은 현대 미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방금 카라바조 전시와 송은 미술 전시를 보고 오니 현대 미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죠?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러자 도슨트 님은 한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너무 좋은 질문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오시니 더욱 대조가 되어서 그런 생각이 드셨겠어요. 사실 제가 현대 미술 전공인데, 저조차도 현대 미술을 무엇이다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번 전시도 그렇고 워낙 다양하게 정의가 되고, 지금도 정의가 계속 바뀌니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며 크게 웃으셨다.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에 힘입어 나는 안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도슨트 님에게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 이 전시를 보면서 지금 이 현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현대 미술인가? 란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증적인 상황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그러잖아요. SNS에서는 가십들만 계속 올라오고 자극적인 것이 후루룩 짧게 지나가죠. 그런 것들이 이 전시에 진열된 오묘한 작품들처럼 조각조각 이어져있는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처럼요. 그런 상황 자체가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고요. 현대 미술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도슨트 님은 박수를 치며 너무 재밌다고 여러 작품과 연결을 지어 설명을 해주셨다.
화려한 건물 지하 1층에 놓인 작은 전시실에서, 갤러리가 문 닫기 전 고작 삼십 분 남짓 남은 고요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작은 미술 대담이 참 좋았다. 여러 이야기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바라는 시간은 이런 것이라고,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나만의 작품을 더 심도 있게 형성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