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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부치는 그림 편지

석파정 서울 미술관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by 김채미

문을 열자 눈이 내려앉은 솔잎과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힌 눈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석파정 위로 조용하고 무거운 함박눈이 지칠 줄 모르고 내렸다. 인왕산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던 석파정은 본래 조선 후기 문신 심흥근이 조영하여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후에 흥선대원군이 계략을 써서 고종을 행차하게 해 김흥근의 소유를 포기하게 하여 별서로 사영하였으며 한국전쟁 뒤에는 고아원과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민간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하였다. 눈이 내려 안쪽까지 살펴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눈이 왔기 때문에 하얀 설경을 볼 수 있었다.


투명한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며 안개에 끼인 인왕산과 눈 덮인 마을을 둘러보고 2층으로 내려와 전시장에 들어갔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쓸 때 의례 첫 문장으로 주로 쓰이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 현대 화가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와 작품들이 걸린 전시였다. 전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현대 화가들의 작품과 어울리는 공간 기획을 할 수 있다니. 작품과 화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없다면 절대 만들어낼 수 없었을 공간 구성이었다. 여태껏 봐 온 우리나라 현대 미술 전시 중 최고로 멋진 기획 전시였다.


첫 번째 충격은 어둠 속에서 신사임당의 초충도 열 점만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수박과 쥐, 봉선화, 양귀비, 가지, 오이, 개구리, 사마귀, 나비가 섬세하게 그려진 초충도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주황빛이 도는 조명을 은은하게 받아 오래전 그려진 그림이 더욱 따스하게 다가왔다. 식물과 생물을 면밀히 살피며 그렸을 신사임당의 애정마저 깃드는 것 같았다. 초충도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래 음미하며 관람을 한 것이 처음이기에, 왜 초충도가 그 시절에도, 현대에도 감탄과 찬사를 자아내는지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16세기에 그려졌음에도 초충도에 그려진 그림은 전혀 옛 시절에 그려진 그림 같지 않았다. 현대에 어느 일러스트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색감과 디테일한 묘사가 일품이었다. 평면적으로 그렸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구도, 식물과 동물의 배치도 독보적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김창렬, 서세옥, 김환기, 정상화, 이우환의 커다란 작품들이 긴 흰색 벽에 나란히 걸린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다섯 화가의 작품을 이렇게 나란히 보았던 게 처음이어서 오묘하고도 어울리는 조합에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김창열의 물방울을 지나, 서세옥의 힘찬 붓놀림이 보이고, 뒤이어 흰 선과 무수히 많은 푸른 면, 그 안에 찍힌 짙은 남색의 점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김환기의 작품이 나오고, 정성화의 검고 푸르고 흰 면들, 마지막으로 이우환의 거친 붓놀림이 나타났다. 작은 캔버스에서 캔버스들의 만나면서 점, 선, 면의 조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공간이 하나의 캔버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 화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둔 기획자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가. 점이 선으로 변하고, 선이 다시 면으로 변하는 과정을 다섯 작가의 캔버스를 나란히 두는 것만으로 성취하고 있었다. 작은 파동이 커다란 물결을 일어내는 것과 같은 감동이 쏟아졌다.


세 번째 충격은 <대화>라는 이우환의 작품만으로 조성한 '무한의 공간'이었다. 이 장소에서 이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수많은 기획자가 머리를 맞대고 공간을 기획했을지, 그들의 노고가 똑똑히 보였다. '무한의 공간'이라는 제목을 보고 공간에 들어서면 가운데 설치된 벽면에서 거친 붓놀림으로 왼편에는 푸른색, 오른편에는 붉은색이 점차 중앙을 향해 움직이는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푸름과 붉음은 점차 진해지다가 중앙에 이르러서는 검은색 기둥으로 바뀌어 붓놀림은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멀리서 작품을 살펴보면 붓놀림이 바깥에서 중앙을 향해 밀려들어가는 것인지, 반대로 밀려들어온 붓들이 다시 검은색에서 푸름과 붉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오직 붓놀림 만으로 세상에서 요동치는 생명력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자아낼 무렵, 관객은 이 공간이 동그란 원형의 모양으로 되어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품과 작품을 조성하고 있는 공간이 곧 세계가 되는 것이다. 둥그런 공간은 '무한의 공간'이라는 말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도형의 상징, 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역동적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대화, 즉 인간이 걸려있다. 앞에 서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객은 관찰자가 되어 한 발 떨어진 장소에서 지금,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세 공간 외에도 마음에 새길 포인트는 너무 많았다. 이중섭 작가의 삶을 조명한 공간과, 그가 아들에게 사랑을 담아 보내는 편지는 이 전시의 제목처럼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안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전시 곳곳에는 실제로 화가들이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보냈던 편지글이 적혀있어서 작가의 삶과 생을 알아보며,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날 보기에 참 좋았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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