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1
내가 깨어나지 않고 침대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으니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내가 대답하지 않고 이불속에 몸을 말고 꼬물거리자 쿡 찌르더니 옆에 인형을 왜 이렇게 늘어놓았냐며 부엉이 인형을 집었다. 내 옆에는 선반 위에 올려 두었던 인형 몇 개가 뒤엉켜 흩어져있었다. 엄마는 들어 올린 부엉이 인형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동그란 게 꼭 챔이 닮았네. 동생이네, 동생.
아닌데, 내 동생은 저기 있는데.
나처럼 꼬물거리고 있을 남동생이 있는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엄마가 웃었다. 그리곤 오늘은 맛있는 거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기운 내자며 나를 토닥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엉이 인형을 내 품속으로 가져왔다.
연말임에도 연말 같지 않은 날이었다. 마지막 날은 마지막 날답게 후련한 마음으로 보내주어야 하는데, 후련하기는커녕 무서운 날이었다. 어젯밤 보았던 뉴스에서 쏟아지던 비명 소리와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참사의 현장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쉬이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선반에 있던 인형을 하나씩 침대에 가져왔다. 이제 내년이면 서른둘인데, 인형에게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다니. 눈을 감으면 자꾸 차가운 바닥과 떨어진 파편들이 떠올라서 한기가 몰려왔다. 발가락부터 차가워지는 한기를 덜기 위해서 작아도 손에 꼭 쥘 수 있는 온기가 필요했다. 사람이 아니어도. 내가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물건이 필요했다. 부엉이는 야행성이랬다. 이놈을 보니 눈도 똘망하고, 동그란 몸통이 꼭 넘어져도 다시 올라오는 오뚝이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뒤척일 때도 잘 보아줄 것이다. 밤에도 눈을 빛내면서. 그런 혼자만의 이상한 믿음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부엉이 인형이 옆에 온 후에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유독 올 12월은 이 질문들 속에서 맴돌았다. 어째서 다섯 손가락 안에 산 햇수를 꼽을 수 있는 아이가, 드디어 죽음이란 문턱을 겨우 넘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랑을 되새기고, 기쁨을 나누려고 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친구들과 동료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신을 찾나 봐.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까.
누군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긍정하려다 밀려왔던 한기가 생각났다.
신은 너무 멀리 있지 않나요. 지금은 당장 붙잡을 수 있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사람의 손이나 온기요.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댔다. 마지막 달이 너무 추워서, 아직 눈이 오지 않았는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추워서 손을 녹일 커피가 간절했을 것이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아침에 읽은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 나온 구절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그 일이란 과연 누가 정하는 걸까. 우연과 운명이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건지. 왜 그들이어야 했는지. 아무리 물어도 나오지 않는 답이지만, 그럼에도 물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