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 <특별할 것> - 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방문하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던 도중, 바로 근처에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소장품 전'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우리나라 시립미술관과 국립미술관은 어떤 작품을 소장할까? 무엇을 보고 선택하고, 어떤 의의성을 눈여겨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달 말에 홍콩 아트 바젤에 다녀왔기 때문에 더 궁금해졌다. 시립미술관에서 선택하는 작품을 아무래도 개인이 소지하기 위한 작품과 다를 테니 말이다. 전시는 1층부터 3층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청주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모두 관람한 결과... 개인적으로 청주시립미술관의 전시와 기획이 너무 좋았다! 아직도 여운이 깊어 작품들이 눈에 선명하다. 시립미술관과 국립 미술관을 한 번에 관람한 덕분에 두 미술관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달까! 청주시립미술관 전시 구성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탁월함을 위한 여정
작품 수집에 있어 '무엇을 수집하는가'라는 질문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능이자 역할이다. 더 나아가, 지속적인 연구가 동반된 소장품 수집과 전시는 미술관의 가치를 보여주는 첫 번째 목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작품 수집에서 벗어나 숨겨진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미래의 가치로 증명하는 수집 과정의 의미는 미술관이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특별한 장소로서 존재하다.
전시 <특별할 것>은 2023년에서 2024년 수집한 소장품을 공개하는 전시이다. 2016년 개관 이후 네 번째 소장품 전시이자 신규 소장품을 연계한 2025년 첫 번째 기획전이다. 전반적 수집 방향은 '미술관 소장품 수집 5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지역 미술의 정체성 확보와 수집 범위 확장을 통한 특성화로 설정하고 있다. 각 전시실에는 미술관 전체 소장품 476점 중 2023년 수집된 29점과 2024년 46점이 전시된다. 이와 함께 기존 미술관 소장품 6점, 소장품 외 별도 참여 작품 21점 등 총 45명 작가의 작품 102전으로 구성되었다.
본 전시의 제목 <특별할 것>은 단순히 특별한 것이 아닌 연구와 보존을 통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미래가치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와 함께 청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수집 정책의 점검, 지역 미술에 대한 정립과 연구 성과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은 <특별할 것>이었는데, '특별한 것'이 아니 '-할'이 들어갔다. '-한'은 이미 완결됨을 말한다. '특별한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특별하다고 종결된 의미이다. 하지만 '특별할 것'은 앞으로도 '특별하게 나아갈 것이다.'라는 미래 시제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특별하지만 앞으로도 특별함을 인정받고 빛날 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 기획과 정말 어울리는 전시 제목이었다.
전시 소개에 적혀있던 것처럼 청주시립미술관은 '지역 미술의 정체성 확보'와 '수집 범위 확장'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전시되어 있는 작가님들이 대부분 청주 레지던시에 묵었던 분들이 많았고, 청주나 충청도 출신 작가들이 많았다. 그들이 청주에 묵으면서 어떤 주제를 면밀하게 관찰했는지, 그리고 청주에 거주했던 작가들이 지역에서 어떤 주제를 벗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갔는지 알 수 있었던 귀한 전시였다. 지역 사회에서 미술이 어떻게 상호작용되고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1층에는 비교적 최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신진 작가님들의 작품이 많았다. 특히 청주 레지던시(청주시에서 작가들에게 예술 작업 공간을 지원해 주고, 그곳에서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작업 활동을 이어나가는 프로그램)에서 묵으며 완성된 작품들이 많았는데, 확실히 자기가 살았던 고장과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이 많았다. 민간 토속신화와 설화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벌이는 정정호 작가님 작품도 인상 깊었고, 고향인 부산 영도 깡깡이 마을에서 낡은 선박의 따개비를 연상시키는 김도희 작가님의 <살갗 아해의 해변:나목>도 너무 좋았다. 따개비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데, 자연의 한 부분 같기도 하면서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아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한 생명이 표면에 가라앉지 않고 배영을 하듯 둥둥 떠다니는 게 연상되었다. 언뜻 보면 자연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턴인데, 캔버스가 움푹 패기도 하고, 묘한 잔물결을 만들어내며 독특한 심상을 자아내서 눈길이 갔다.
그밖에 미디어 작품들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미디어에 눈길이 많이 가더라. 영상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나와 좀 더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이 먼저 가 아닌 감성이 먼저 끌리는 영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감상을 했다.
2층엔 충북과 청주미술을 정립하기 위한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하였다. 작은 소책자를 읽어보니 확실히 청주와 충북 지역 출신인 화가들, 혹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이 많았다. 2층을 둘러보는데 정말 기백에 놀라고, 이런 작가님들이 있었을 줄이야? 하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작가님들이 많았다니! 작품을 보는데 감탄의 연속이었다. 작품 활동을 15년, 20년, 30년, 40년 하신 분들의 기백은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작품에 말 그대로 영혼과 주제 의식들이 선명하게 담겨있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깜짝 놀랐던 작품은 황인기 작가님의 <방 금강전도>였다. 소책자로 봤을 때는 앞에서 본 평면적 모습만 담겨 있어서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린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레고였다니!! 소책자를 다시 읽어보니 '1990년대 중반부터 전통 산수화의 이미지를 디지털 픽셀로 전환하고 레고 블록을 접합하는 방식의 디지털 산수화를 선보였다.'라고 설명에 적혀있었다. 옆에서 보면 레고의 오돌토돌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앞에서 보면 영락없이 한지에 누군가 먹으로 깊게 그림을 그린 수묵화가 나타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디테일하게 할 수 있을까. 작품을 보면 산뿐만 아니라 윗부분에 빛바래진 종이의 질감까지 선명하게 표현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검정과 노랑, 입체와 평면이 만나면서 정말 아름답고 신선한 작품이 탄생되었다.
맞은편에는 이종관 작가님의 <줍/픽>이라는 작품이 크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가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중남미 지역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쓰레기들이 아름다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뒤샹이 물었던 '무엇이 예술인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가 버린 껌 종이, 인형, 감자튀김, 유리병이 진열되어 있어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가 많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