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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마음으로 보기'

청주시립미술관 <특별할 것> - 2

by 김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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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훈 <마음으로 보기>


정창훈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탐색한 조형 세계를 선보인다. 1980년대 마렝 자코메티 조각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선보인 그는 점차 인물의 형태를 확대하거나 새와 물고기를 형상화하는 전환을 맞이한다. 즉, 인간의 신체를 매체로 사용해 삶의 이야기와 행위를 함축하거나, 인간 내면의 원시성과 연결된 원초적 생명성을 시각화한다. 이는 자연은 생명의 본질이며 추상적인 예술 역시 자연을 반영한다는 작가의 예술간은 함축한다. <마음으로 보기 03>은 원만한 곡선과 극도의 간결성을 추구한 조형미가 드러나는 작품으로, 삶과 자연의 본질을 성찰하고 화합하려는 이상적 세계를 나타낸다.



커다란 방을 나오니 두개로 갈라진 복도에 또 다른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청주시립미술관이 특히나 마음에 더 들었던 이유는 다양한 공간 활용과, 이동이었다. 전시를 관람할 때 마음을 잡아끄는 요소 중 하나가 생각하지 못한 공간 요소들인데, 이전에 석파정 전시가 그러했고 홍콩 M+미술관이 그러했다. 그리고 청주시립미술관도 독특했다. 계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1층에서 2층으로 큰 계단을 올라가 전시를 한 바퀴 구경하고 나면 다시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전시 공간도 독특했다. 특히나 2층은 벽면에 설치된 미디어 작품을 관람하면서 들어가면 작은 문으로 들어가 커다란 방을 구경하고 다시 복도로 나와 복도에 걸린 작품, 복도를 지나 펼쳐지는 또 다른 작은방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미술관이 아니라 마리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고 집에 걸린 작품들을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에 창문에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햇빛이 들어와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복도에서 잊지 못할 작품을 만났다. 정창훈 작가님의 <마음으로 보기>라는 조각 작품이었는데, 너무 귀엽고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보고 또 보고 그랬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님이 있었다니! 볼록 솟아오른 산봉우리에 돌고래나 작은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둥근 호가 올라가 있가 그 위에 자유롭게 비행을 즐기는 사람이 허리를 잔뜩 젖히고 앉아있었다. 조각을 보자마자 영상이 떠오를 정도였다. 파도에 몸을 맡긴 돌고래와 소녀, 분명 조각은 멈춰있었는데 움직이고 있었다. 정적인 힘에 동적인 힘이 이리 강하게 들다니. 정말 대단했다. 그게 힘이다. 조각의 힘이다. 멈춰있음에서 살아있다는 착각을 들게 만드는 게 예술이었다.

특히 저 위태롭게 맞닿아있는 원과 원의 중심점이 대단했다. 원과 원이 만난다는 것은 세상과 세상이 만난다는 뜻이다. 위에는 동물과 사람, 이 땅을 살아가는 생명의 세상이 있고, 아래에는 생명이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대지, 바다의 세상이 있다. 생명의 세상과 자연의 세상이 하나의 점에서 만나고 점은 다시 둥근 호를 그리며 순환한다. 세상이 순환하고, 생명이 순환한다는 것이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을까. 제목 또한 '마음으로 보기'다.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이렇게 즐겁고 천진난만함 속에 순환이 깃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 정창훈 작가님의 인터뷰가 있어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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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로부터 기인奇人이거나 기벽奇癖이 있다는 말을 듣지는 않나요?
“저는 지극히 평범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들이 말하는 빽 없고 돈이 없지만 기죽어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큰 욕심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이제까지 많은 조형물을 제작했지만 언제나 제작비의 10%만 내 것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배운 것에 대한 실천자가 되어야겠다는 신념엔 변함이 없습니다. 더러 상처를 받을 땐 침묵으로 일관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치유가 돼요. 오해를 했다면 풀어지고 모함을 했다면 벗겨지지요.”
-좌우명이라면…
“‘늘 생각하고 늘 움직여라’고 뇌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이 있다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늘 생각하고 늘 움직여라는 자신에 대한 주문은 자신을 자연스럽게 사색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남겨놓고 싶은 말이나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시류 따라 움직이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확고한 자기 생각이 없이 시류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 것은 사라질 것이지요. 제 꿈은 거대한 산을 하나 갖는 것입니다. 욕심이겠지만 한국의 한복판쯤 되는 위치에 1만 평쯤 되는 크기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만한 면적에 큰 바위가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그곳을 조각하면 거대한 작품 하나가 탄생할 것입니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꿈을 조화시키면 분명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처 : 동양일보(http://www.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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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작품인 <작품 75-11>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할 수 있는 초기 작품들이다. 추상적인 선과 여백으로 구성된 화면에 물감을 뿌리는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중첩과 번짐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제' 시리즈는 현재의 엄격한 패턴과 극단적인 수공성으로 접근해가는 작가 고유의 꽃 시리즈가 나오기까지 작업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연영애 <작품75-11>



복도에 걸린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고 안쪽 공간으로 들어오니 또 다른 작품 세계들이 펼쳐졌다. 추상적인 회화 작품,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함께 걸려있었다. 그중에서 연영애 작가님의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아서는 윤형근 작가의 그림과 엇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확연히 달랐다. 역동적인 선들이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마치 은하와 우주를 화폭에 새겨놓은 것 같았다. 커다란 다섯 개의 그림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인간이 보지 못하는 생명 에너지가 이런 걸까? 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흑과 백, 음과 양이 커다란 캔버스에서 조화를 이루고 그 세상 안에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리며 순환하고 움직인다. 이 조화로움이 온몸으로 느껴져 정말 감탄했다. 소책자에 이 무제 시리즈 이후 '꽃 시리즈'로 향해 나아갔다고 적혀 있어, 그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하고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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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기획전을 열면서 회원도 증가했고 회원들의 활동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작가들의 발굴은 고무적인 일이며 앞으로 그들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단체를 이끌어 가면서 때로는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충북 화단에 튼실한 뿌리가 될까를 늘 고민하는 그로서는 단체의 활동을 통해 충북미술계의 단단한 기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학교에서나 화단에서나 여성임을 내세우기보다는 언제나 씩씩하고 당당한 미술가로 살아온 그에게도 늘 소소한 고민들은 따라다닌다. 평생 활두로 안고 가야 할 작업에 대한 고민이 그 첫 번째다.
아주 오래전, 딸아이가 유년기 시절이다. 종이 오려 붙이기 놀이를 함께 하다 평생 작품의 화두가 돼버린 그만의 독특한 작업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커다란 유리에 특수 제작된 테이프를 붙여 꽃과 잎 형태를 그리고 칼로 오린다. 그것을 다시 캔버스에 붙여 나이프를 이용해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고 테이프를 떼어낸 다음에 다시 중첩되게 여러 형태를 만들면서 붙이고 칠하고, 떼어내고를 반복한다. 이 작업과정에서 오는 육체적인 고단함과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을 창작해야 하는 화가로서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다. 초창기에 탁하고 어둡고 복잡한 느낌의 그림이었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해지고 맑고 투명해지는 그림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루전이 발생해 그림은 점점 투명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밤새 작업을 하고 이제 손을 씻고 자야지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싱그럽고 촉촉한 기운이 가슴으로 느껴지면서 그 맑은 기운이 캔버스에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39659


꽃이 중심 소재와 된 작품도 너무 아름다웠다. 유리와 테이프를 사용하여 꽃과 잎의 모양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캔버스에 중첩되게 하는 독특한 작품 스타일이라니. 이렇게 한 화가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 스타일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참 신기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정말 다양한 우리나라 작가님들을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이게 전시지. 정말 기획의도와 어울리는 멋진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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