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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Aug 25. 2019

[영화] 죽어도 썬덜랜드

한번 맺은 인연 끝까지 변치 않으리


나의 분신이라 여기던 축구나 야구팀이 작년까지 리그 우승을 다투다가 올해는 최하위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이면서 수개월 동안 단 한번의 승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내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팀이 그러하다면 이것은 기분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낙이 없어지고 식탁에서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사라지고 괴성을 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기회가 사라지는것 이상의 문제이다. 


‘죽어도 썬덜랜드(Sunderland ‘til die)’는 이렇게 쇠락해가는 축구팀과 연고지 주민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좌절을 그린 영화인데 근래에 가장 높은 몰입감과 영감을 주었던 영상물이다.  


썬덜랜드(Sunderland)는 영국 동북부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선덜랜드는 17세기 이후 석탄산업을 위주로 성장한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석탄이나 철광 산업으로 근육이 단련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썬덜랜드AFC는 이곳 사람들에게 종교이자 숙명과도 같은 축구팀이다. 1879년에 팀이 창단되었으니 지금 이곳에 사는 지역주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렬한 썬덜랜드의 광펜으로 살아왔으며 다른 선택지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팀의 성적이 좋을 때에나 나쁠 때에나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다만 광적으로 응원을 할 뿐이다. 


이 팀의 최근 성적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가장 최근이라고 봐야 1973년에 FA컵 우승.  그리고 2006년에 2부리그인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고 2007년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지만 2017년 5월에 2부리그인 챔피언스리그로 강등되었다.   


이 영화는 썬더랜드AFC가 굴욕적으로 챔피언스리그로 강등된 해인 2017년 하반기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팀은 몇 해 전부터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스테디움(Stadium of Light)에서 경기를 하고 있으며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이나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은 가히 최고 수준이며, 프리미어리그 팀 수준에 합당한 최고의 staff들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지역주민들은 지난 10여년간의 프리미어 리그시절의 영광이 다시 찾아오기를 고대하며 더더욱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상위 3개 팀에 해당하는 기록을 내고 프리미어 리그에 다시 오르는 것은 생각도 못할 지경이며 크리스마스가 다가 올 무렵에는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여 3부리그로 강등이 될 위기에 처한다. 홈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홈경기에서 다시 승리를 하는데 무려 364일이 걸렸다. 무승부라도 해서 승점 1점을 추가해 어떻게 해서라도 강등권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수비수는 너무 쉽게 허물어지고 골키퍼는 어이없는 골을 헌납하기까지 한다. 연초에 이적시장에서 골키퍼와 미드필더 등을 데려오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경쟁력 있는 주전선수의 숫자가 충분치 않다. 구단주는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단장)는 펜들이 원하는 수준의 외부영입을 진행할 자금을 동원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강등권을 벗어날 수 있는 분수령과 같은매우 중요한 경기에서 패하면서 1승 7무 8패를 기록하자 사이먼 그레이슨 감독이 경질되면서 명망 있는 감독인 크리스 콜먼을 영입한다. 그는 웨일즈 축구대표팀을 유로2016 대회에서 4강까지 올려 놓아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은 지도자이다. 그는 다른 지도자와 비교하면 탁월한 면이 돋보인다. 선수들이 어이없는 실수로 패배를 하더라도 현장에서 즉각적인 분노를 폭발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분명히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그가 웨일즈를 엄청난 팀으로 변화시켰듯이 썬더랜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또 그 믿음을 전파한다. 팀은 조금씩 변화되어 나간다. 선수들은 매우 어려운 경기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동점골을 터뜨린다. 최하위가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부활절의 기적처럼 상위 랭커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열악한 선수층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는 좀 처럼 찾아 오지 않는다. 3부리그로 강등될 것이 확실해보이는 팀에 그 어느 선수들도 오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팀에서 임대되어 와서 주전 골게터롤 활약하던 선수들이 원소속팀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결국 썬더랜드는 3부리그로 강등이 확정되고 곧 이어 크리스 콜먼 감독은 경질된다. Happy ending을 기대했던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구단주는 팀을 매각해버리고 새로운 구단주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투자와 수익의 관점에서 선순환의 흐름이 끊기고 악순환이 가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격랑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펜들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썬더랜드와 함께 한다.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원정경기에 버스를 타고 가는 열혈 펜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강등이 확정된 이후에도 펜미팅에서 감독과 단장을격려를 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또 어떤 펜은 죽기전에 유서에 썬더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팀의 대표문양인 흰 바탕에 붉은색라인으로 장식한 관을 사용해서 장례식을 치르게 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하느님께 애원을 하기도 한다. 사제와 신도들이 한목소리로 기도를 올린다. 

“신앙의 공동체로 모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선덜랜드 축구팀과 우리 도시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성적이 좋을 때에만 열혈 펜을 자처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아예 축구경기 시청을 거부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썬더랜드의 시민들처럼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할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도 말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국이나 조직의 성과가 좋지 않거나 전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쓴 소리를 뱉어 낼 때가 있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Sunderland till die'.  잘 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니, 추락하는 내 팀을 보듬어주고 변치 않는 사랑을 주는 썬더랜드 축구 펜들이 참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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