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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Sep 22. 2019

[음악] Debussy - Claire de lune

음악 독후감

(음악도 책 읽듯이 읽은 후 감상을 쓴다. 이른바 음악 독후감.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면서 머릿속을 스쳐가는 상상의 세계에 영혼을 맡겨 보았다는 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7_VJve7UVc&list=PL_w2-jcdGJOkqEKD9-FyV_YkvvqYj9hJs&index=28&t=0s



속삭이는 멜로디와 여백이 있는 첫 소절이 흐르고, 눈을 감고 피아노 선율에 영혼을 맡긴다. 나는 짙고 푸른 하늘에 초승달이 떠있는 숲 속 한가운데에 편안한 잠옷을 입고 덩그러니 서 있다. 귓가를 스치는 시린 바람에 마른 낙엽의 쓸쓸함이 전해온다. 입에서 스며 나오는 날숨에는 하얀 겨울이 묻어 나오고, 나는 스산함에 양팔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떨구어 발을 바라보니 헐벗은 맨발이지만 대지 위의 살얼음이 웬일인지 편안하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발걸음 한 발을 내딛는데 내 몸이 중력을 이기며 두둥실 떠올라 낯익은 풍경들을 스르륵 뒤로하고 멀리 낯선 호숫가까지 와버렸다. 아래로 보이는 작은 호수의 명징한 수면 위로 달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무리지은 떡갈나무잎이 구름처럼 천천히 달을 가리며 흘러간다. 나뭇잎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천천히 지나간다. 


코 흘리게 철부지, 축구공을 자전거 짐칸에 꽁꽁 묶고 열심히 페달을 밟는 꼬마 아이,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술 취한 대학생, 딸아이와 산책을 하는 젊은 아빠, 태풍을 온몸으로 맞서는 가로수, 잿빛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 서리 내린 숲길의 흔들리는 전나무 잎, 여름이 지나 주인을 잃은 잠자리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군고구마의 남은 조각들. 오랫동안 바라만 보다 가지 않은 길, 만들다 멈춘 플라스틱 로봇. 


여러 가지 모습의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에 있는 작은 조약돌 하나를 호수를 향해 던진다. '첨벙' 하고 파문을 일으키는 물결과 함께 나의 추억들은 사라진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라지는 추억을 바라보는데 호수가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숲 길 한가운데 홀로 서있다. 찬 바람이 훅 하고 목덜미로 들어오고 냉기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옷깃을 여민다. 종종걸음으로 한참을 걸어 산장으로 들어온다. 곧바로 창가에서 거센 바람이 들어와 열어 놓은 문을 쾅하고 닫는다. 


나는 따듯한 벽난로의 온기를 느끼며 푹신한 카펫에 누워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깊은 꿈속을 거닐 던 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시 몸을 뒤척였다. 자연스레 오른손이 스르르 풀리며 작은 돌이 미끄러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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