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go Nov 09. 2019

깨강정에 대한 은밀한 관찰

[책] '인간 본성의 법칙'을 읽고 

이 글을 쓰려고 모니터의 브런치 화면을 바라보는데 책상 우측 구석에 놓여있는 구백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의 책 한 권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인간 본성의 법칙(로버트 그린)', 좀처럼 달려들기 쉽지 않은 제목이다. 현대 사회의 '명심보감' 같이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훈계로 가득 차 재미라곤 하나도 없을 듯하다. 두께만큼의 압박감에 주눅이 들어 한 달째 거실과 공부방을 옮겨가며 틈틈이 읽으려 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각개 격파하기로 했다.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본 후 18가지 인간 본성의 법칙 중 가장 흥미를 끄는 3번째 법칙, '가면 뒤에 숨은 실체를 꿰뚫는다'를 우선 읽기로 했다. 인상 깊었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밀턴 에릭슨(Milton Erickson, 1901~1980)은 18세 때 갑자기 온몸이 마비가 되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급작스런 병마로 인해 눈동자 말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는 일곱 명의 누이와 형제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누이가 '응, 좋은 생각이네'라고 말했지만, 목소리에 감흥이 없고 밋밋한 것을 종합해보면 '사실 내 생각에는 전혀 좋은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즉, '좋아'라고 말한 것이 '싫어'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누이가 표현하는 말 중 무려 16가지의 '아니(No)'를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자기 안에 몰두하고 타인을 관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작고 힘없는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미소나 목소리 톤을 해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이런 감수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틀을 기준으로 타인에게 그들이 원하지 않는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Albert Mehrabian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나누는 모든 의사소통 중 언어적 소통은 불과 7% 뿐이고 55%는 표정이나 바디랭귀지이고 38%는 목소리톤이라고 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적 신호를 넘어서 비언어적 신호까지도 잘 포착할 수 있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좋은 관계 형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상대가 내미는 비언어적 신호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면 상대의 기분을 감지할 수 있고, 이 기분을 거울처럼 상대에게 보여주면 상대는 나와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이제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밝혀야겠다. 최근에 일 때문에 만난 젊은 교수님이 한분 만났다. 항상 미소를 띤 표정에 어투도 참 부드럽고 다정해서 참 좋은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항상 깍듯하게 경어를 쓰시고 열심히 경청을 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스타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이 늦어져 여럿이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계산을 하셨다. 식당 카운터에서 그를 기다리며 무의식적으로 식당 입구에 판매용으로 전시해놓은 깨강정 세트에 잠시 눈이 팔렸다. 아마 한 3초 정도 바라본 듯하다. 그러다가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계산을 마치고 나온 그분의 손에 기다리는 사람 수만큼의 강정 세트가 들려져 있었다. 그분은 나를 유심히 살피고 계셨던 거다. 그러다가 내가 보낸 비언어적 신호를 읽고 행동에 옮기신 거다. 나에게는 그분의 세심한 배려가 참 기분 좋은 충격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런 일이 있었다. 카톡의 생일 알림 기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저 말뿐인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는데, 그 교수님으로부터는 따듯한 메시지와 함께 책 선물이 왔다. '인간의 본성의 법칙'이었다. 책이 배달된 후 목차를 보면서 그분을 생각했는데, 그분은 인간의 두 번째 언어인 '몸짓'을 관찰하고 세심하게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까지 감지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분이라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번 주에 읽었던 '비폭력 대화'를 그분께 선물을 하였다. 비폭력 대화의 첫 번째 단계인 '관찰'의 대가이신 그분께 드리는 카드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교수님,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나서 선물로 드립니다. 이 책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라 이미 모델로 살고 계신 분이기는 하지만 교수님의 자화상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분과 선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행동을 하게 된다. 위선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업무관계에 있는 사람 앞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듣다가 하품을 한다거나 따분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이나 예의를 따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가면의 한 꺼풀 아래 숨어있는 상대방의 실체를 잘 관찰할 수 있다면 우리는 효과적인 인간관계 구축용 비밀병기를 하나 마련한 것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