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께서 큰 수술을 하셨다. 오른쪽 고관절이 퇴화되어 지난 1년간 잘 걷지 못하셨는데 연세를 고려하여 섣불리 수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신뢰할만한 의사를 찾아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무릎 인공관절만 해도 만만치 않은 수술인데 고관절(허벅지와 아랫배 사이)의 연골 부분을 다 긁어내고 인공관절을 심었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지만 역시 우려했던 대로 회복이 매우 더뎠다. 빠른 시일에 재활을 하려면 걷기 운동을 해야 하는데 연세가 있다 보니 생각보다 오랫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하셨다. 팔목으로 무통 주사와 항생제가 쉴 새 없이 들어가니 속이 메스껍고 속이 쓰리다며 10일 가까이 음식도 제대로 못 드셨다. 여든이 되도록 사회활동을 하실 만큼 건강하셨고 평소 식욕이 왕성하셨던 분이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고 음식을 잘 못 드시니 자식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아내가 장인이 좋아하시는 카스텔라를 사 갔다. 장인은 카스텔라라는 말에 실눈을 뜨시고는 냄새만 맡게 해 달라 하셨다. 코 끝에 카스텔라 조각을 가까이 가져다 대어 주니 얼굴에 화색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아~ 카스텔라네. 한 조각만 입에 넣어줘~ 이제 좀 살 것 같다."
아~ 카스텔라가 대체 뭐길래 이러실까.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카스텔라는 지금 우리에게 캐비어라 불리는 철갑상어알쯤 되는 고급식품에 해당하는 걸까? 정말 놀라운 일이 나일 수 없다. 가만 기억을 떠올려 보니 부모님 세대에는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셔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꽤 큰 정사각형의 카스텔라를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자식들 먹이려고 일부러 결혼식장에서 식사(메뉴가 거의 갈비탕)를 안 하고 허기를 참으며 카스텔라를 받아 들었다고 한다.
장인께서 나에게 까맣게 잊었던 카스텔라의 추억을 떠올려주셨다. 가만히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니 나의 부모님도 자식이 아프면 머리맡에 약봉지와 함께 어김없이 노란 카스텔라와 바나나 우유를 놓아주셨다. 우리는 아픈 형제의 간식을 뺏어 먹지는 못하고 무엇이라도 남겨질 것을 바라며 호시탐탐 들여다보았다. 설혹 카스텔라를 남기지 않고 다 없어지면 빵을 싸고 있는 종이는 달콤한 향기에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형제들의 몫이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면 롯데 껌처럼 단물이 입안을 적셔주었다.
카스텔라를 대중화시킨 보름달 빵은 우리 세대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보름달 빵이었다. 어린아이 얼굴만 한 보름달 빵과 우유 한 잔은 든든한 대용식이었다. 달달한 딸기 크림은 담백하고 싶어서 담백한 게 아니라 소비재의 다양성 부족 때문에 담백하게 살던 우리들의 입맛을 한방에 사로잡았다. 중학교 시절 내내 점심식사 후 학교 계단에 앉아먹던 삼립 크림빵은 아직도 슈퍼에서 볼 때마다 하나씩 사서 먹는데 보름달은 몇십 년간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내일은 보름달 하나로 마음을 채워 봐야겠다. 장인께도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 바나나 우유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