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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go Jan 24. 2020

코스트코에서 코스모스를 생각하다

쇼핑 싫어하는 오십대 남자의 푸념

[참고 이미지 : 코스트코 차이나]



오늘 감정 소모가 많았다. 설날을 하루 앞두고 와이프는 사람 많기로 유명한 대형할인점을 가자고 했고 나는 내키지 않았으나 하는 수 없이 끌려나갔다. 주차난으로 유명한 코스트코는 어김없이 쇼핑센터를 둘러싸고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긴 차량행렬을 맞닥뜨려야 했고,  우여곡절 끝에 주차에 성공하고 나니 오늘 할일을 다 한 것 같은 성취감과 피곤함이 몰려 들었다. 쇼핑을 하기도 전에 지치다니. 이미 쇼핑을 할 에너지는 방전을 향해 가고 있었다. 


1층 매장에서 식품매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엄청나게 긴 카트들이 교황청을 방문하는 순례자처럼 늘어서 있었다. 속으로 아멘을 외치며 미음자(ㅁ)로 빙빙 돌아 지하 매장에 들어서자 마치 내일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흥분감이 감도는 결핍된 눈동자들의 파티장 같았다. 와인, 소갈비, 소불고기, 햄과 치즈를 향해 수많은 손들이 부딪히며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웽~'하며 귓가에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울, 그중에서도 명절 전날 다운타운의 대형 쇼핑센터에 내가 왜 와 있어야 하는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No'라고 말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어깨를 밀치고 새로 내온 냉동 갈비를 향해 불나방같이 달려드는 다른 이들을 탓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멍하니 서서 그들을 방해하고 있었으니. 암튼 빨리 이곳을 나가자고 부탁 반 투정 반을 하여 겨우 빠져나왔다. 계산대를 향하는 좌우로 서있는 다른 손님들의 스테레오 타입 대화가 아직도 귀에서 쟁쟁 거린다. 


"이 고기는 육질이 좋아 보이는데 이거보다는 조금 더 전에 매장에 나와있던 거야. 아무래도 육질이 좀 떨어져도 신선하고 사야 할까 봐~"


"와, 오랜만에 몬테스 알파가 할인을 엄청 하네. 한 열병쯤 살까?" (사실 나도 이걸 한 병 사기는 했다)


"냉동 갈비가 싸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비싼 냉장 갈비보다 맛이 없겠지? 어떻게 할까? 자기야"


영화 'What women want'에서 세상 모든 여성의 속마음이 들려서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던 멜 깁슨이 된 심정이었다. 귓가에 모터 소리는 더 굉음을 울려대며 빨리 이 소란스러운 곳을 빠져나가서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5층 주차장으로 간신히 올라와 Exit 사인을 따라 주차장을 나오는데 두 갈레 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맞은편 염치없는 여성 운전자가 내 차례인데 자기 차를 주책없이 밀어 넣었다. 나는 경적 소리를 크게 여러 번 울리며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왔다. 물론 차의 유리창이 닫혀있어 나만의 분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건물을 빠져 나갈 때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얼굴을 계속 실룩실룩거렸다. 


쇼핑센터를 나오자 좌회전하면서 경부고속도로로 빠져나가려는 수많은 귀성인파 차량과 완벽하게 뒤섞여 버렸다. 이건 정말 생지옥 경험이다. '와이프는 이게 다 누구 집 때문에 이러는지 알지?'라며 이 모든 힘든 쇼핑이 시댁 어른들 저녁 식사 준비 때문임을 강조했다. 내 거칠어진 입을 사전 봉쇄한 거다. 아~ 명절에 그냥 집에서 김치찌개 해 먹으면 안 되나? 시댁이라는 곳은 그 전주에 다녀오면 안 되나. 대형 쇼핑센터에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나는 왜 무례한 여성운전자 때문에 화풀이를 하며 내 감정을 소모했을까? 왜 분풀이를 애 굿은 와이프에게 했을까? 


이렇게 점 하나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을 하고 그것을 준비하느라 또 다른 점으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미친 듯이 구매를 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살아야 할까? 대안은 무엇일까? 자라면서 기억에는 부모님은 이런 상황에 항상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기실 스님들의 아침 기상 시간이 새벽 3시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리고 그분들의 공양에 고기반찬이 없다는 사실, S자로 꺾인 인체공학적인 의자에 앉지 못하고 딱딱한 바닥에 앉아 어깨에 대나무 봉을 맞아가며 참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일치감치 그런 꿈은 버렸다. 


점 하나에 있을 때 담백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37억 년 전 생겨난 우주 속에 한낱 먼지 같은 태양계, 그 먼지 속의 먼지 같은 지구에 살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이동하며 크게 이동하는 것은 정신세계에서 행하는 것에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르쥬 모란디처럼, 바흐처럼 물리적인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아도 아찔한 상상력으로 풍부한 영감 속에 살고 싶다. 우주를 생각하면 조금 더 냉정하게 내 색깔대로 내 인생을 색칠하며 살고 싶어 진다. 보이차를 여러 잔 마셔보아도 명절 전날 먹은 기름진 음식이 불편한 포만감을 전한다. 아! 좀 더 담백하게 살고 싶다.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하고 많이 걷고... 그리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잘 안될 거라는 거 알기 때문에 더 하고 싶다. 


(칼 세이건이 아닌 다른 분의 코스모스란 제목을 읽었어요. 김근수 작가의 '코스모스, 사피엔스, 문명:인류, 끝나지 않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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