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Soju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별 대책도 없이 파주로 와서 열심히 카드를 긁으며 참치를 먹다가
'어라? 취업 못 하면 곧 파산하겠는데?'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몇 달은 놀아도 괜찮겠지 싶어 그렇게 크게 걱정하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네에... 철이 없었죠...
1, 2차에 걸쳐 장을 보긴 했지만, 여전히 빈 공간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어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 열심히 카드를 긁고 다녔습니다.
파산하기 전에 양주 한잔쯤은 괜찮잖아?
꼭 필요한 것 맞습니다. 아무튼 맞아요.
어쨌거나, 첫 독립의 기쁨에 취해 흥청망청 보낸 것도 며칠.
곧 서서히 답도 없는 통장 잔액과 원룸의 장단점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첫 자취 새내기가 느낀 원룸의 장점은 명확했습니다.
장점!
1. 소주 맥주 양주 와인 막걸리로 집을 도배해 놔도, 등짝을 때릴 엄빠가 없다.(별 다섯 개!)
2. 청소하기 편하다. 좁아터졌으니까...
3. 냉난방비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좁아터졌으니까222
그에 비해 서서히 드러난 단점들은...
1. 방음이 잘 안 된다.
전입신고를 하다 안 사실인데, 생각 없이 계약한 원룸은 불법으로 방을 쪼갠 건축물이었습니다. 다행히 보증금도 크지 않았고 딱 1년만 살다가 나왔기에 전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당연히 계약 전에 잘 알아봐야 합니다... 멀쩡한 집을 쪼개놨는데 당연히 방음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죠. 아무튼, 룸바룸이겠지만 원룸은 대체로 방음이 잘 안 됩니다.
2.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화장실, 거실, 부엌, 내 방이 명확히 구분된 곳에서 30년을 살다 이 모든 것이 10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구겨 넣어져 있는 원룸에서 지내려니 곧 답답해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벽간 소음이 걱정돼서 TV를 크게 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 안에 있어도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게다가 요리하는 곳과 먹는 곳, 쉬는 곳과 일하는 곳, 자는 곳의 구분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제 파주살이 첫 1년은, 거의 매주 어떻게든 약속을 만들어 서울로 가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파주 첫해는 꽤 외롭고 답답한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3. 치안이 걱정된다.
원룸 건물은 대부분 빽빽하게 방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많고 여러 생활 소음에 시달립니다. 자려고 누워있는데 난데없이 좌우양옆위아래위위아래 집에서 청소기 세탁기 이중주를 울리지를 않나, 취객이 쿵쾅대며 오르내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고, 때론 취한 건지 어쨌는지 현관문을 누가 몇 번이고 돌린 적도 있었고요. 경비원도, 동거인도 없기에 혹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관 옆에 호신용 몽둥이를 하나 가져다 두고, 가까운 경찰서 위치도 파악하고 지냈습니다.
4.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걸 굉장히 즐기는 편입니다. 누구에게 해주는 것도, 저 스스로를 위해 만드는 것도 모두요. 그런데 원룸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굉장히 한정적이었습니다.
먼저, 고기나 생선 등을 '굽거나 튀기는' 조리법은 모두 배제해야 했습니다. 기타 향이 강한 음식들도 모두.
왜냐하면 작고 소중한 원룸 안에는, 주방뿐만 아니라 여러 옷가지들과 매트리스, 책 등이 있는데 거기서 삼겹살이라도 굽는 날엔...... 한 끼 맛있게 먹자고 구웠다가 최소 한 달은 후회할 게 뻔했으니까요.
게다가 아주 작은 2구짜리 가스레인지에는 조금만 큰 프라이팬이나 냄비 하나만 올려도, 다른 화구엔 아무것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화구 두 개를 동시에 써야 하는, 조금이라도 복잡한 조리법을 가진 음식은 만들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항상 원팬 요리나 간단한 요리만 해야 했는데, 그래도 배달보다는 뭐라도 만들어 먹으려고 1년 내내 발악했답니다. :) 그리고 이때 맺힌 한은, 다음 계약한 집에서 다양한 주방용품과 식재료 사재기로 터져버리는데... 이 이야기는 꽤나 뒤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ㅎㅎㅎ
아무튼. 작고 소듕한 원룸과 함께 지지고 볶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네, 흥청망청 쓴 카드값과 월세, 각종 공과금을 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거죠.
애써 외면하고 있던 카드값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날, 다시 한번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짜로 신용불량자 되기 전에, 이력서부터 돌려야겠다...!'고 말이죠. 두둥.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