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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Apr 27. 2020

여백의 시작

<나도 작가다> 공모전

여백의 시작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


와이파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메신저 통화 음질이 흐릿해도 평소와 다르게 담담한 엄마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아빠가 안 좋아.”


몇 분 뒤 아빠의 시한부 선고가 메일로 날아왔다. 아빠의 담당 의사였다. 엄마의 요청으로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영문으로 작성된 의사 소견서. 아빠는 이미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또 한 번의 시한부 선고라니. 메일을 클릭하기 두려웠다. 곧 터질 것 같은 긴박한 제목의 메일을 조심스레 열어 보니 그는 현재 간암으로 인해 위중한 상태이고 생존 기간은 일주일 혹은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한부 선고 라기보다 사망 선고에 가까웠다. 나는 지도 교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날 밤 나의 과거와 미래가 뒤엉킨 자취방의 흔적들을 하나씩 버렸다. 몸이 가벼워져서 메일처럼 순식간에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짙은 소독약 냄새로 덧칠한 병실, 누군가 장작같이 마른 팔다리를 힘겹게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힘없이 쓰러지는 그의 눈빛을 외면하고 주위를 연신 둘러보아도 그 외에 환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을 붙잡고 내 시선이 그의 까슬한 아랫도리를 지나 잔잔한 물결이 이는 눈에 다다랐을 때,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아빠였다. 과거의 이기심과 현재의 미안함이 나를 무겁게 짓눌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여름에 축축해진 손으로 메말라 버린 그를 안고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는데 그가 내 귀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살자.”


1 동안 보지 못한 자식에게 하는 말이, 죽음을 앞둔 그에게서 나온 말이, 어쩌면 마지막이  수도 있는  말이 “열심히 살자.”라니. 그는 언제나 내게 열심히 강조했었다. 그를 알고 있는 누구도 그가 열심히 산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그의 삶은 빽빽했지만, 그 안에 그는 없었다. 오로지 가족, 형제, 친구, 동료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그였다. 그런 그가 죽음 앞에 있다.

그리고 이틀 ,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없이 무거울 것 같던 그 순간은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생명이 태어나고, 자식을 낳고, 지난한 삶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수십 년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순간이 이토록 허망할 줄이야. '열심히 살자'라는 그의 말이 무색하게 인생의 덧없음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 스몄다. 그리고 한 줌의 가루가 된 그의 유골함 앞에서 나는 나로서 오늘을 살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때까지 나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헛헛한 마음이 들 때면 부모를 생각하고, 동료를 생각하고, 과거를 생각하며 이 헛헛함이 잘살고 있음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 나를 사회 속에 갈아냈다. 둥글게, 더 둥글게. 갈아내서 무뎌지고 색 바랜 내 모습을 동료들은 좋아했다. 그때는 몰랐다. 나의 고통에 자신을 투영해서 위안을 얻는 것이란 걸.

그런데 어렵사리 간 유학길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모두가 달랐다. 생각도, 옷차림도, 삶의 방식도, 누구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수업도 기존에 없는 내 이론을 만드는 것이었다. 30년 넘게 ‘남들처럼’ 살기 바빴는데, 내 것을 가져오라니. 창피했다. 지난날의 비겁한 합리화와 나태한 선택들, 무엇보다 무딘 내 모습이 창피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 온 블록으로 쌓아온 무력한 탑을 무너뜨리고 내가 만든 블록으로 다시 탑을 세우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나는 나를 묶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디자인이었다. 예상외로 나는 디자인에 큰 흥미가 있지 않았다. 어쩌면 디자이너라고 보이는 것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을 전공해서 관련된 일을 하고, 유학까지 왔던 10년 동안의 흔적이 첫 번째 제거 대상이라니. 허무했다.

두 번째는 껍데기였다. 나는 지나치게 많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여주기 위한 수단들(옷, 틀, 집단, SNS..). 나를 구성하고 있는 주변의 것들이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지워 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관계였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관계가 끊기는 것이 겁이 나서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만나기 일쑤였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홀로 지내면서 나로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이후로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빽빽했던 삶에 여백을 만드니 내 윤곽이 드러났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찰.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일상의 조각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잘 조립해서 무언가를 만들 때가 행복했다. 짧았던 하루가 새로운 것들을 맞느라 길게 느껴졌다.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


고로

나는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작가의 삶이 시작되었다.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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