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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Jun 11. 2020

한때의 꿈


한때의 꿈


통 넓은 바지에 챙모자를 쓴 노인 둘이 벤치에 걸터앉아 장기를 둔다


탁! ! 척!


장기알이 장기판에 부딪치는 소리

녹색 알이 빨간 알을 죽이는 소리

육체를 벗어나는 소리


곧게 편 허리

돋아난 핏줄

손에 쥔 권력

부푸는 가슴

발기한 팔각기둥

크고 두꺼운 것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


다닥다닥 붙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입으로 대신해주는 피스톤 운동에도

두꺼운 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담배연기만 꿈틀거릴 뿐

한참 동안 뒤척거리다 버티다가 왔다 갔다 결국

'장이요'


한 세상이 한 세상을 정복하는 짜릿함

10초 남짓 

이내

드러나는 남루한 장기판

와르르 쏟아지는 장기알


몸이 컸던, 건들거렸던 장군

흐물거리고 느리게 걸어가는

 굽은 뒷모습

한때의 꿈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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