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by 참진



비를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묵은 때를 밀어내는 소나기는 더 좋다.

시원한 냄새와 청량한 소리, 무엇보다 빗방울이 내 피부에 닿는 순간을 좋아한다. 샤워기에 나오는 물방울과는 다른 자유로움이 느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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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곤 한다. 우산이 있어도 맞는다. 비가 온몸을 두들기면 죽어있던 세포의 감각이 살아난다. 내 몸이 악기라면 비가 온몸에 연결된 수만 가지 현들을 퉁퉁 튕겨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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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미쳤다고, 감기 걸린다고 한사코 말리지만, 한여름에 바닷물 속에서 노는 것과 수영장에서 흠뻑 젖어 몇 시간이고 노는 것에 비해 점점이 오는 비를 맞고 노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비 속에서 몸을 활짝 펴고 걷다가 섰다가, 걷다가 섰다. 찬비에 흠뻑 젖으면 되려 몸이 따뜻해졌다. 그 따뜻함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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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다가 어느 빌라 주차장 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 빗방울이 박혀 알알이 무지갯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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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생각한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 긴 여정의 폭발음, 그 향연.

이곳저곳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비 오는 날의 오케스트라.

눈을 감고 듣는다.

걸으면서 들어도 좋지만 청각에 집중하기 위해 촉각은 잠시 쉰다.

비가 없었다면 음악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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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몸 던져 한없이 유랑하다가 마지막에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럼 여한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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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

비가 있는 것도.

비를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비가 또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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