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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진 Dec 30. 2020

낙지



낙지


1

흰색 스티로폼 박스 속에서 머리의 개수를 헤아려요


바닥에 닿지 못한 발들이 꿈틀거리고

빛을 굶은 낙지들은 빛을 맞느라 수면을 찢어요

투명 비닐은 네모나고 벽은 매끈해서 직각의 다리는 떨어지지 않고


그 ‘세’가 그 ‘세’인 줄도 모르고

내 눈은 언제나 입이 되었죠



2

몇 마리는 자르고

몇 마리는 끓이고

몇 마리는 굽고


남은 두 마리는 모서리가 돼요


머리에 달린 심장이 쪼그라들면

숨통이 벌렁대고 

수면은 둥글게 울어요

우는 소리가 클수록 희망이 있는 거예요


새였던 날들을 기억해


고인 기억 흐릿해지고

흐릿한 숨은 고여가고

조용한 날에 날개 없는 새가 잡혔다



3

숨구멍으로 파고드는 육수

파고들었던 삽

뭐든 구멍이 막히면 끝이에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는 몸이 슬퍼


피부부터 심장까지 굳어가는 건 찰나였죠 보통은 심장부터 피부까지 굳어가는데 말이에요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 돌이 되어버린 순간이 이러할까요?


회색과 분홍색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젓가락의 중심점은 목적만 있어

박제된 몸의 과정은 점이 되어 흩어져 버립니다


 속살은 빛의 스펙트럼을 가뒀지만

날것의 냄새는 살아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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