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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틀린 결정을 한다.

by 시우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온 M&A 전문가 팀장(이제훈 역)이 팀원 신입 사원에게 차분하게 말한다.

“진수 씨, 일에 감정을 섞지 마세요. 그냥 게임이라 생각하세요. 쉽지 않겠지만.”

“M&A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전쟁은 무기로 싸운다면 M&A는 계약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총칼에 감정이 없듯이 계약서에도 감정은 필요 없습니다. 감정적이면 전쟁에서 집니다. 감정을 섞으면 내 시야가 좁아집니다.”


뭔가를 선택할 때, 감정을 섞지 말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성으로 결정하라고 우리는 배웠다. 이 가르침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간 뇌는 의식 영역과 무의식 영역이 상호 교감하여 작동한다. 의식영역은 뇌 바깥 부분을 여러 세포층으로 둘러쌓여진 대뇌피질에서 관장하며, 무의식 영역은 뇌 안쪽 깊숙이 위치해 있으며 주변을 감싼 변연계에서 관장한다.


무의식은 우리 몸에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라고 명령하고, 바깥 날씨가 쌀쌀하면 몸을 보호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멋진 이성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려 설렘이라는 시그널을 준다. 임산부들이 평소 즐겨 먹지 않는 닭발, 순대, 족발, 등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이는 무의식이 본능으로 영양 부족분을 찾는 움직임이다. 뇌과학자는 사랑도 성욕을 쓴 가면이라고 한다. 뇌에서 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나 도파민 같은 쾌락 호르몬이 분비되면, 사랑하라는 신호이며, 콩깍지가 덧씌워진다고 한다. 의식은 알다시피 경험이나 학습을 통하여 배운 통계 데이터가 작동하는 이성 영역이다.


우리가 뭔가를 결정할 때, 이성 영역만이 작동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험에 비춰보면 알 수 있다. 연인 만남에서 첫 느낌이 좋아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감정영역인 직감이 작동된 것이다. 어떤 중요한 사업 방향을 결정할 때, 데이트를 근거로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감이다. 신경과학자는 무엇을 결정할 때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작동하지만 무의식 영역은 반드시 포함된다고 한다. 인간은 지식을 얻고 경험을 통하여 지혜를 배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하나 이상 감정을 동반한다. 심리학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성보다는 되레 감정 치우침이 더 크다고 말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급 자동차를 판매하는 럭셔리한 매장에서, 판매 직원이 전시된 자동차를 판매하고자 손님에게 정성껏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때 유리 벽 바깥에서 노숙자가 노크했다. 이 판매원은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데스크에 가서 미리 준비한 보온병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그 노숙자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그리고 얼른 매장으로 들어와 다시 고객에게 차량 제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손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만 설명하라고 한다. 그 순간 판매원은 손님에게 결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도 좌절하여 고개를 떨군다. 그러한 찰나에 고객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어 판매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계약하자고 했다. 그 판매원은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다.


이 고객은 왜 고급 자동차 구매를 순식간에 결정했을까? 이는 이성보다 감성이 작동됐기 때문이다. 판매자 행동에서 신뢰를 얻었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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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든 데이트를 분석 평가하여 합리적 결정을 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런데 이 합리적 결정마저 이면에는 오류가 숨어 있다. 우리가 배워서 옳다고 습득한 지식 자체가 오류투성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식을 습득한 인지 오류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판단을 내릴 때, 데이트 근거로 계산한 확률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경험법칙에 비추어 어림짐작 지름길을 택한다. 이런 지름길은 대체로 인지 오류 Cognitive errors를 범한다.


독일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에 따르면, 인간은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부딪치면, 문제를 빨리 풀기 위해 단순하고 즉흥적인 추론을 쓴다고 한다.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 통계자료를 사용하기보다는 어림짐작 법칙을 사용한다. 어느 음식을 먹어야 할지, 어떤 브랜드 제품을 사야 할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때, 모든 정보를 통계 확률을 계산을 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뇌가 인식에서 상당한 부담감을 가진다. 그래서 인간은 체계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하려고 애쓰지만, 어림짐작 지름길을 택한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대표성 휴리스틱이라 한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합리적 판단을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 충돌로 선택 결정에 결함을 가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합리적 선택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가지만 실제로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 두뇌는 정확성에 맞춰 기능하는 게 아니라 생존 효율성에 맞춰 작동한다. 그래서 인간이 선택하는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불안전하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선택 결정할 때 ‘틀린’ 것에서 ‘옳은’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틀린 것에서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갈 뿐이다. 따라서 올바른 결정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차 없는 확실을 추구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항상 내가 옳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틀린다. 틀리기 때문에 변화하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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