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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y 14. 2024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먼저 작가를 읽어야 할 소설이다.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이다. 로맹 가리는 60세(1974년)에 에밀 아자르 이름으로 「그로칼랭」 첫 소설을 발표하고 연이어 61세에  「자기 앞의 生」을 발표하여 그 해에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나는 사람들이 내 등에 붙어놓은 로맹 가리의 고정된 이미지가 싫어졌다. 무려 삼십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내 얼굴을 만들어 준 것이다(p327). 작가는 파리풍의 비평을 극도로 싫어했다. 어떤 작품을 발표해도 작가에게 덧씌우진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젊은 시절, 초창기, 첫 소설에 대한 향수,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에 시달렸다. 새로 시작하는 것, 다른 존재로 사는 것이 내 존재에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절대적인 허무와 무력감. 그리고 말로만 하는 절대에 대한 취미를 잃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에밀 아자르의 첫 소설「그로칼랭」을 발표한 후, 그는 파리풍 비평가들에게 아주 통쾌하다는 듯 그 뒤틀림을 내심 반겼다. 


 그는 죽는 날까지 에밀 아자르가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창작 욕구는 매년 작품을 출간할 정도로 매우 강했다고 한다. 로맹 가리는 66세(1980년)에 그의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라고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입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 생을 마감했다. 죽기 전에 그는 친구에게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네”라고 술회했다.

  「자기 앞의 生」 소설은 14살 ‘모모’ 가 주인공이다. 1987년 대학가요제 수상곡 가수 김만준 〈모모〉 노래 말이다. 이 노래는 「자기 앞의 生」을 읽고 작사한 것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의 멜로디가 좋아서 따라 부르곤 했는데, 노래 가사가 「자기 앞의 生」 소설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 소설 키워드를 뽑아내기가 수월하지 않다. 저자는 주인공 모모를 통하여 현실 사회에 관련된 견해를  여러 갈래로 쏟아낸다.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지만 흔하디흔한 보편적 사랑이 아니라 사랑 너머에 어린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 사랑이다’. 반드시 사랑 앞에 순수라는 낱말이 들어가야만 그나마 어울리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p311).


 뚱뚱한 유태인 로라 아줌마는 프랑스 파리 변두리 빈민촌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7층에 살고 있다.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며 수년간 모로코 알제리에서 몸으로 벌어먹고 살았다. 그녀는 창녀촌에서 출생한 아이들을 돌보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아이들이 많을 땐 일곱 여덟 명이 된다. 모모도 그곳에서 갓난쟁이 때부터 함께 살았다. 14살인 모모는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로라 아줌마의 손발이 되기도 하지만  영락없는 길거리 소년 부랑아다. 로자 아줌마는 우리 중 누구에게 오는 송금이 끊겨도, 그 아이를 당장 내쫓지 않았다. 아이를 빈민 구제소에 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아이의 미소만은 떠나보낼 수 없었다. 아이와 아이의 미소를 떼어놓을 수 없는 노릇이니, 별수 없이 데리고 살 수밖에(p23). 그녀의 성품을 잘 나타내어 준다. 


 모모는 학교에는 갈 수가 없었지만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고 함께 교감을 나누는 이웃이 있었다. 길거리가 학교였고, 이웃이 선생이었다. 모모가 가장 잘하는 것은 달리기였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모모는 집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터졌을 땐 거리로 힘껏 내달리며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하밀 할아버지는 이런 모모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하밀 할아버지가 내가 좋아하는 니스 이야기를 해줬다. 할아버지가 거리에서 춤추는 광대며 마차 위에 앉아 있는 즐거운 거인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P51). “ 모하메드야,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증거는 너 자신뿐이란다. 하지만 너는 참 좋은 아이야(p49)”  


이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란다(p72)” 로자 아줌마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p96).”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뇌혈증이라는 병에 걸린다.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며 급기야 자주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시 돌아오곤 한다. 어린 소년 모모가 감내하기엔 너무나 거칠고 투박한 소용돌이다. 모모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로자 아줌마를 떠나 돌보아 주겠다고 하는 이웃집으로 가면 그만이다. 모모는 마주하는 현실을 두렵고 무서워하면서도 로자 아줌마를 떠나지 않는다. 되레 지독한 사랑을 한다. 모모는 <모모> 노랫말처럼 철부지이며, 맑은 하늘에 뜬 무지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했다. 아주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p232).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p232). 이 소설이 보석같이 빛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제도권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빈민층 사람들, 창녀, 여장남자, 이민 노동자, 노인, 모든 이들이 이웃 되고 모모와 함께 생존 너머에 있는 生을 살아간다. 그들은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삶에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을 가진다. 순순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신에게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라고 답을 한다. '모모'는 우리가 거칠고 투박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잃어버린 그리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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