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인간 본성을 이긴다

by 시우

루시퍼는 빛을 내는 자 혹은 샛별이라는 의미로,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천사였지만 오만으로 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천상에서 추방됐다. 루시퍼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존재였지만 동시에 추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드라마 <무빙>에서 국가 블랙 요원이 신분 세탁하여 고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한다. 그의 임무는 특수한 힘을 가진, 이를테면 총을 맞고도 죽지 않거나, 엄청난 괴력을 지녔거나, 하늘을 날아다닌다거나, 멀리서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대단한 청력을 지닌, 이른바 특수한 힘을 지닌 젊은 기력자를 발굴하는 일이다. 이 임무는 무척이나 오랜 기일이 걸린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선생으로 위장한 이 블랙 요원은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진짜배기 선생이 됐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어 지도했고, 개개인 개성을 발굴하여 그 기질이 빛나게끔 정성을 다했다. 그야말로 참된 선생이 됐다. ‘환경과 상황’이 이 블랙 요원을 변하게 했다. 이처럼 인간은 주변 여건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거칠게 말하면 상황이 인간 본질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자 필립 조지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교수는 인간이 선한 모습으로 행동하느냐, 악한 모습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을 죄수와 간수로 나눠 역할 분담을 시켰더니 시간이 갈수록 간수는 포악해지고 가학적 인간으로 변해갔다. 완장을 차면 달라진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동일한 맥락이다. 선량한 사람이 악마로 변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상황인 셈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많다.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만든 사람은 히틀러였다. 나치 독일의 2인자이며 게슈타포를 창설한 악명 높은 헤르만 빌헬름 괴링은 1933년 라디오에 나와서 “동물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실험을 경험하고 있다. 죽어가는 동물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겠다”라고 밝혔다.


인간 선택과 행동은 그 사람의 고정된 본성보다 그때그때 마주하는 상황 압력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선한 본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잔인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 보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상황적 요인이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착한 심성을 지닌 신념이 강한 아이도 특정 집단에 속하면, 또래 학생들 따돌림에 가담하거나 방관하는 행동에 별 거리낌 없다.


이에 대한 성찰은 이렇다. “나라면 절대 안 그럴 텐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는 타인의 나쁜 행동을 보면, 그 환경과 여건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 사람 ‘나쁜 본성’ 탓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여건, 짓누른 듯는 타인 시선 압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동일한 행동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의지가 강하고 착하니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만은 금물이다. 험한 말로 누구나 특정 상황에서는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잔인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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