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고통을 체험해 보고 싶다면

육아생활자 수기 #13

by 참깨

너~무 아픈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출산을 앞두고 나는 산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가늠해보고 싶었다. 얼마나 아픈지, 어떤 식으로 아픈지 알아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들 말하는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느낌’이라거나 ‘콧구멍으로 수박이 튀어나오는 고통’이라는 표현들은 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자연분만 후기들을 찾아 읽었다. 혹시 몰라 제왕절개 후기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신체의 고통을 언어로 번역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지 아무리 후기들을 읽어도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하긴 정신줄 잡기 바쁜 출산의 와중에 자신의 고통을 하나하나 헤아려 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고통을 가늠하지 못한 채로 나는 분만실에 들어갔고, 그 어떤 표현과 묘사로도 접해보지 못한 고통 끝에 자연분만을 했다.



필라테스로 산통을 재현해내다


출산보다 힘들다는 육아 전쟁에 지쳐서, 혹은 눈 앞에 있는 너무 예쁜 아이에게 반해 출산의 고통은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출산 후 100일 정도가 지났을 때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산통에 가까운 고통을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 있었다. '체험판' 혹은 '베타 버전'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출산에 비하면 극미한 수준이었지만 분명 산통에 가까운 통증이었다. 잠깐 얼얼해졌던 정신을 다시 되찾고 나자 타인에게 산통을 조금이라도 와 닿게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라테스 시간,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하던 중이었다. 필라테스 기구인 캐딜락의 푸쉬바에 양 발바닥을 대고 무릎을 굽히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반으로 접어 상하체를 가까이하는 동작을 취하며 나는 끙끙대고 있었다. 체력장 유연성 테스트 때 하던 동작과 유사했지만 '순간 치기' 기법 같은 것은 통하지 않았다. 허벅지 뒤쪽이 유난히 뻣뻣한 나는 이 동작을 가장 힘들어했는데 그 날 따라 원장님은 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허벅지 뒤쪽에 오는 강렬한 장력을 견디며 얼굴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찡그리면 혼났다)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원장님이 조금 더 늘려보자며 내 뒤꿈치를 잡고 몸 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나의 팽팽한 허벅지 뒷근육은 자기 조직을 늘리는 대신 무릎 관절을 굽어지게 만들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호통이 날아왔다. ‘무릎 펴세요’라는 말이 목재와 거울로 된 넓은 룸에 메아리쳤다.


대략 이런 자세. 출처: https://www.rhinebeckpilates.com/


무릎을 펴기 위해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햄스트링을 신전시키려는 순간, 강렬했던 고통의 기억 한 조각이 내 하체를 타고 벼락처럼 흘러 들어왔다. 나는 악, 하고 소리를 질렀고 더는 못하겠다고 캐딜락에서 내려와 버렸다. 원장님과 운동하며 해본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었다.



짧게 쓰는 출산의 기억


내 하체를 훑고 지나간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출산의 고통이었다. 그런 종류의 고통을 나는 대략 100일 전에 필라테스 룸이 아닌 분만실에서, 캐딜락이 아닌 분만 침대에 누워 견디고 있었다. 낮은 출산율을 증명이라도 하듯 출산 중인 산모라고는 나 혼자뿐인 대학병원의 분만실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차가운 금속들이 인공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뻣뻣한 천들로 둘러싸인 채 분만 침대에 무릎을 세운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필라테스 기구 캐딜락. 분명 분만 침대와 유사한 점이 있다. 출처: https://images.app.goo.gl/wt3yhUVvTWGeaKoM8


출산 선배들은 변을 보듯 엉덩이 쪽에 힘을 주면 수월하다고 했다. 문제는 한 번도 누워서 변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의료진에게 누워서는 힘을 못 주겠다고, 쪼그려 앉아서 힘을 주고 싶다고 읍소했다. 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무통 주사 때문에 가슴 아래부터는 내 몸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힘을 줄수록 하체가 아닌 얼굴이 팽창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의사는 무통 주사를 꺼버렸다. 신기하게도 무통주사를 끔과 동시에 어딘가에 숨어있던 감각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 감각이란 곧 통증을 의미했다.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극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하체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 없이, 일단 내가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1분마다 찾아오는 규칙적인 통증의 리듬에 맞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을 준지 두 시간 만에 훈기를 낳았다. 진통이 시작된 지 27시간 만이었다. 정말 기뻤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순간의 환희를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회고하지만 나에게는 생존의 기쁨이 먼저였다. 간호사들의 바쁜 손길 아래에서 꺽꺽대며 우는 아이를 얼이 빠진 채 지켜보며 나는 ‘살았다’라는 말을 나만 들리도록 여러 번 되뇌었다.



궁금하다면? 스트레칭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고통의 한 조각을 필라테스 시간에 다시 느낄 줄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트레칭을 하며 산고가 재현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위해 뼈는 벌어지고 근육은 늘어나야 하니까. 아이가 빠져나올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 내 근육들은 내 몸에 붙은 이래로 유례없을 만큼 스스로를 늘리고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슴 아래부터 무릎까지, 대략 스트라이크 존의 세로 길이에 해당하는 모든 근육들이 동시에 강제로 스트레칭당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 고통이 100일 만에 캐딜락 위에서 재현된 순간 나는 포스 넘치는 원장님에게 처음으로 단호하게 ‘no’라고 맞서야만 했다. 그때 흘린 많은 땀은 분명 식은땀이었을 것이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모조리 다 아프다. 출처: 두산백과


혹시라도 나처럼 겪어보지 못한 산고가 궁금한 누군가가 있다면 큰 근육 하나를 골라 스트레칭 해보길 권한다. 단, 능력껏 하는 스트레칭은 소용없다.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절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마도 마블리 같은) 누군가를 소환해보자. 그가 사랑과 정성을 다해 근육의 양 끝을 잡아 힘껏 당겨주는 느낌이어야 하겠다. 여기서도 끝은 아니다. 그 통증에 복부와 등, 골반, 허벅지에 있는 수십 개의 근육의 수를 곱하면 얼추 출산의 고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사랑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힘껏 당겨줍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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