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쓴 학교 이야기 연재를 마치며
연재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고 자축하며 먹은 저녁이 체했나 보다. 삼킨 것들을 고대로 게워내고 밤새 앓았다. 오한으로 땀에 젖은 채 옅은 잠의 안팎을 드나들며 나는 그새 또 문장들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꼭 타이핑해야지, 한 글자도 빼놓지 말아야지. 성긴 문장들 사이를 헤매다가 아침을 맞았다.
학교에서의 일을 글로 쓰고 싶진 않았다. 겨우 빠져나온 곳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어렵게 되찾은 내 일상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인데 굳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싶었다. (내) 글에는 그다지 힘이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부조리를 바꾸고 싶다며 야심 차게 쓴 글이 물류 창고의 재고로 쌓이는 과정을 첫 번째 출판을 통해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글을 써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여전히 학교에서 분투하고 있는 옛 동료들, 친구들의 얼굴을 앞으로도 쭉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누군가를 먼저 피하고 외면해 버리곤 하는 내가, 그들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 옆에 남아서 응원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걱정과는 달리 나는 꽤 많은 장면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은 10년 동안 곱씹었던 일이기도 했다. 물론 기억이 있었던 일 그대로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곱씹는 과정에서 각색된 내용이 글에 담겼다. 내 각색 속에서 ‘나’로 표현되는 인물은 대개 용서하거나 반성한다. 내 각색 속에 등장하는 여러 타인들에게는 그럴법한 이유가 있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오래 고민해서 써도 괜찮다고 판단한 장면들만 썼다.
의도하지 않은 수확을 얻기도 했다. 미워하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고 나서 내뱉은 글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한결 녹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 걸음 더 이해하고 완성한 글은 왜인지 더 마음에 들기도 했다.
25일 동안 18편의 글을 썼다. 빠듯한 일정이다 보니 글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들쭉날쭉하다. 하필이면 가장 못 써서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글이 포털 메인에 걸려 매우 부끄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자발적으로 들통 내는 일이라, 그걸 피하려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음이라 이참에 또 한 번 들키고 간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까. 낯익은 고민을 또다시 받아 들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더 적게 증명하고 더 많이 들통 나도 되는 삶이길 바란다. 나머지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