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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깨 Sep 06. 2019

육아생활자 수기 4. 우리의 최선은 다를 수밖에



D+233


일요일 낮이었다. 오전에 테니스 클럽에 다녀온 남편이 나에게서 훈기를 넘겨받아 안고 어르고 있었다. 요새 훈기는 체온이 곧 사랑인 양 자주 안겨 있으려 한다.


남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일반 통화 수신음이 아닌 카카오톡 음성통화 벨소리다.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남편의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남편에게서 훈기를 다시 받아 안고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었다. 나도 결혼 전에 남편과 미국 여행을 갔다가 함께 본 적이 있는 친구였다. 통화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락이 반가웠고, 아기를 낳았다고 들은 지 꽤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 크고 있는지 궁금했다.


둘은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기 전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육아 라이프를 나눈다. 엄마들처럼, 아빠들도 다르지 않구나. 남편이 그쪽 아기의 월령을 확인 차 묻고, 발달 상황을 묻고, 타지에서의 육아가 힘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같은 물음이 되돌아온다. 훈기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대답을 들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 주말을 아이와 함께 어떻게 보낼지도 서로 묻고 답한다. 그곳은 토요일 밤이고, 이곳은 일요일 낮이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14개월짜리 아기가 있는 가족은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었다고 한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7개월짜리 아기가 있는 우리는 삼촌 생일을 축하해주러 곧 할머니 댁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사무치게 질투가 났다. “외부 자극”을 많이 주기 위해 아직 어리지만 주말마다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는 그 가족이 누릴 캘리포니아의 푸르름이 눈에 훤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의 채도를 한 단계씩 높여주는 쨍하도록 맑은 공기가, 한겨울에도 해만 떠 있다면 포근한 그 기후가 부럽다. 12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훈기에게 ‘외부 자극’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했다. 겨울의 이곳은 혹독하게 춥고 건조하다. 어딜 가더라도 전염성 강한 각종 질병들을 걱정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공기가 더럽게 나쁘다.


16시간의 시차를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고 있는 두 남자는 곧 있을 출장 이야기와 그때 가질 비즈니스 미팅 등으로 화제를 바꿨다. 나는 착잡한 마음이 들어 훈기를 안은 채 괜히 거실을 서성였는데 훈기는 안고 돌아다녀주니 좋다고 파닥이고 있다. 몇 분 간의 통화가 더 이어졌는데 나는 더 이상 내용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통화를 마무리하며 오빠가 던진 말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너희는 아이에게 외부 자극을 주기에 알맞은 환경을 잘 이용하며 살고 있고, 우리는 친척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관계를 맺게 해주고 있으니 서로의 현실에 맞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니겠냐”


내가 훨씬 긴 시간을 들여 육아와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은데 정답에 가까운 말들은 대부분 남편에게서 나온다.



201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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