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상에 나온지 263일
오늘도 엄마의 친구인 Y이모와 그의 아기인 동갑내기 친구 H와 도서관과 호수공원 나들이를 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느꼈던 뜨거운 여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오후였다. 엄마의 친동생인 이모가 나를 보고싶다며 택시를 타고 달려와 나들이에 합류했다. 얼떨결에 이모 두 명과 산책을 하게 되었다.
주위에 이모가 여럿이다. 엄마의 친구인 이모는 나와 동갑인 친구를 키우고 있다. 또 다른 이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을 배 안에 품고 있다. 엄마의 직장 동료들이던 이모들은 나보다 한 달 먼저, 한 달 늦게 태어난 친구들을 기르고 있다. 엄마가 아끼는 동생인 또 다른 이모는 대학원에 가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엄마의 친동생인 나의 이모는 바쁨을 즐기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아기를 키우며, 부른 배를 안고 지내며, 하고싶은 공부를 하며, 일터에서 모자람 없는 일인분의 역할을 하며. 이모들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로 어른의 일들을 해내고 있다.
나, 세상에 나온지 264일
이모가 출근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우리는 점심을 먹고 함께 전철역 근처의 까페로 갔다. 이모는 어제 우리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잠도 잤다. 내가 보고싶은 날에는 가끔 그렇게 한다. 내 입에 빵을 조금씩 떼어 넣어주며 엄마가 이모한테 말한다.
“너 어제 새벽에 훈기 우는 거 들었지?”
“어. 무슨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울어? 어디 아픈 줄 알았네.”
“밤마다 한 시간씩 그렇게 뻗대면서 운다니까.”
그렇다. 나는 요새 잠투정을 한다. 아빠가 출장으로 집을 비울 무렵부터 그랬으니 거의 20일 동안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운다. 꼴깍 잠으로 미끄러졌다가도 곧바로 정신줄을 다시 찾아 붙잡고 운다. 나의 부모는 치아 네 개가 동시에 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예상한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른다.
어젯밤에는 이모가 나를 안고 재웠다. 이모는 나를 잘 재우기로 소문이 나 있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워 한다. 엄마는 이모를 적당히 칭찬하며 나를 재우는 임무를 이모에게 슬며시 넘기곤 한다. 이모는 빔으로 거실 벽에 BTS 영상을 틀어놓고 30분 동안 나를 안고 흔들었다. 엄마의 품과는 다른 푹신한 감촉에 그만 잠투정 없이 잠이 들어버렸다. 이모는 자신의 실력을 보라며 엄마와 아빠에게 거들먹거렸다.
나에게는 어떤 법칙이 하나 적용된다. 다이어트를 위해 한 끼를 굶으면 다음 끼니에 폭식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나의 잠투정도 하루치 총량이 있어 그 총량을 반드시 채우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젯 밤에 잠투정을 마음껏 하지 못한 나는 새벽에 잠에서 깨버렸다. 정확히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 반에 다시 잠들었는데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굳이 기록으로 자세히 남기지는 않겠다. 다만 눈을 감은 채 나를 어르는 엄마가 나를 떨어뜨릴까 겁이 나서 더 세차게 울었다는 변명은 꼭 남기고 싶다.
이모는 내가 밤마다 어떤 잠투정을 하는지 엄마에게 하나하나 보고받았다. 보고가 다 끝나자 “이놈 시키, 너 자꾸 그러면 이모한테 혼난다”라고 했는데, 그러면서 뽀뽀를 해대고 셀카를 30장 넘게 찍으면 나더러 무서워하라는 건지 뭔지 참.
나, 세상에 나온지 265일
우리 집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손님은 단연코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그러니까 아빠의 엄마와 아빠. 두 분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집에 오신다. 목적은 오로지 나, 나를 보기 위해서다.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셨다. 오실 때마다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주시는데 내가 밥을 먹게 된 이후로는 나를 위한 국을 주로 싸오신다. 할머니는 항상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시는 분이다. 할머니의 소중한 시간이 듬뿍 들어간 음식은 항상 맛있다. 그런 할머니가 오늘은 꼬리곰탕을 해오셨다. 나를 위해 특별히 무를 넣어 곤 꼬리곰탕이다. 어제 할머니의 부엌에는 뜨거운 김이 폴폴 나는 냄비가 하루 종일 달그락거렸을 것이다.
할머니의 꼬리곰탕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는 임신한 엄마를 위해 꼬리곰탕을 한 솥 해오셨다. 그 때 나는 아주 작았다. 1센치 남짓한, 리터럴리 콩알만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작은 몸에 심장이 막 생긴 참이었다. 빠르게 쿵쿵대는 심장 소리로 온몸이 울려댔다. 그 즈음 엄마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먹지 못한 채로 밤낮 없이 잠만 자던 시절이었다. 먹지 않고 잠만 자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는 동고동락하던 동그란 난황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쑥쑥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꼬리곰탕을 한 입도 먹지 못했다.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과는 별개인 문제였다. 대신 아빠가 몸보신을 제대로 했다. 며칠 동안 같은 국만 먹어야 했지만, 아빠는 반찬 투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먹일 기대로 부푼 할머니가 고기를 잘게 잘라 국물과 함께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그 때 하필 낮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라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흥보다는 짜증이 났다. 할머니는 평소처럼 잘 먹지 않는 나를 보고 조금 서운해하셨다. 꼬리곰탕이 맛이 없었던 게 아니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데.
내일 점심 식탁에서 다시 식욕 왕성하게 꼬리곰탕 한 그릇을 해치우는 모습을 비디오로라도 찍어 보내드려야겠다.
나, 세상에 나온지 266일
오후 두시 반, 나는 엄마를 대동하고 느티나무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식구들은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아기가 앉기에 가장 적당한 좌석에 미리 자리를 잡았다. 나의 감정 동요에 대비한 맨 뒷줄의 통로 근처 자리가 마침 비어 있었다. 빈 자리의 주인들이 하나씩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미소로 말을 걸었더니 그들도 미소로 대답을 해주었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는 첼로 연주로 시작되었다. 나를 보고 한참을 방긋 웃어주던 첼리스트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이의 어깨에 두르듯 팔을 들었고 곧이어 활을 그었다. 생후 8개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우아한 소리가 났다. 매일 엄마의 똥땅거리는 피아노 소리만 듣다가 전문연주자의 연주를, 그것도 생음악으로 듣다니 내 귀가 오늘 제대로 호강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두 명의 작가였고, 커플이었다. 둘은 같은 눈을 하고 웃음으로써 같이 사는 사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같은 시간, 아빠는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과천에 있었다. 2승 1패로 짜릿하게 예선을 통과한 그는 이제 자신의 파트너와 토너먼트를 치르고 있었다. 얼굴과 팔이 벌겋게 익는 것도 모른채, 공 하나하나에 남들보다 한 발씩 더 뛰어서 승수를 쌓고 있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공들여 관찰하며 미소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청중들의 표정이 반대로 변했다. 책의 한 꼭지를 낭독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울음을 참으려 애썼고, 행여나 피해가 갈까 구석으로 가서 눈물을 닦고 돌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내 표정도 함께 슬퍼져버렸는데, 마침 잠이 와서 그랬던 건지 사람들의 표정을 닮아버렸던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 순서인 질의응답이 끝날 때까지 잠들지 않고 함께했다. 그것이 삶의 일부를 아프게 떼어내 들려준 고마운 분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우리 모두는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상장 하나를 받아 와서는 싱글벙글이었다. 그의 테니스 인생 최고의 성적이었다. 테니스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것이 매일 하는 제일 큰 고민이라고 하는 그에게 아주 값진 성과였다.
엄마와 나는 성의껏 아빠에게 축하를 표현했지만 마음껏 웃어주지는 못했다.
새삼스럼지만, 우리는 같은 하루를 다르게 보냈다.
나, 세상에 나온지 267일
내 방이 생겼다. 내가 요구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점심을 먹고부터 엄마, 아빠는 하루 종일 움직였다. 방바닥을 닦고, 짐을 나르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빨래를 돌렸다. 그 동안 나는 보행기를 타거나 쏘서를 탔다. 내 생각에는 두 번 일하기 힘드니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 김에 그냥 내 방을 만들어준 것 같다.
원래 옷방이던 방이 내 방이 되었다. 원래 그곳에 있던 옷들은 창고방으로 쫓겨갔다. 내 방은 안방과 마주보고 있다. 어른 걸음으로 두 걸음이면 안방에서 내 방으로 건너올 수 있고, 내가 몸을 예닐곱번정도 꿈틀거리면 내 방에서 안방으로 건너갈 수 있다.
방을 한 번 구경해 보자. 옷장이 있다. 책장에 책들이 꽂혀 있고 장난감도 놓여 있다. 공기청정기도 있다. 이런 세심한 배려까지.
그리고, 두꺼운 이불이 깔려 있다. 이불? 왜 이불이 여기에 깔려 있지? 아기방은 낮에 아기들이 책보고, 장난감 가지고 노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엄마 아빠랑 안방에서 그대로 자면 되는데, 왜 이불이 여기에 있어요? 엄마? 아빠?
나, 세상에 나온지 268일
우리 셋은 자주 함께 기쁘고, 때로 따로 슬프다. 우리는 애써 자신의 슬픔을 숨기곤 하지만, 기쁨을 숨기려 애쓰지는 않는다. 혼자 삭이고 마는 슬픔보다 기쁨이 전염력이 강하다는 것은 축복인 걸까.
이야기가 처음부터 샛길로 빠졌다. 전염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 전염, 그 바이러스의 짓궂음은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항상’ 함께 아프다.
내가 요로감염, 감기, 중이염, 독감을 앓는 동안 엄마는 감기, 몸살, 독감을 앓았다. 같은 기간 동안 아빠는 감기, 몸살을 여러 차례씩 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5개월이 되던 무렵, 한 달 동안에 우리 가족이 겪은 질병들이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건조했다.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로 돌려막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우리는 몰랐다. 나의 부모는 잠시 이산가족이 되기로 결심했고 자신의 부모 집으로 들어가 각자의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몸을 추스렀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뒤집기를 할 수 있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 다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아빠가 먼저 감기를 앓았고, 그가 기운을 차리니 나와 엄마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콧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여기에서 끝이기를.
나, 세상에 나온지 269일
나는 큰 대학병원에서 태어났다. 나를 낳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을 하던 엄마가 나를 낳기 두달 전에 여러 분야의 전문의들이 있는 병원에서 출산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병원을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요로감염 때문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을 했었고, 후속 검사들을 위해 내원해야 했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곳의 모든 곳은 붐볐다. 응급실에도 사람이 가득가득, 로비에도, 병실에도, 매점에도, 카페에도, 수납창구에도 항상 사람이 많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곳이었다.
엄마, 아빠에 의하면 그 병원에는 유일하게 한산한 곳이 딱 한 군데 숨겨져 있다고 한다. 바로 분만장과 신생아실이다. 당연히 내 기억에는 없는 장소이다.
이미 20시간 가까이 집에서 진통을 참고 있던 엄마는 진통 간격이 짧아지자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배에 측정기를 달고 진통을 견디던 엄마에게 아빠가 말했다.
“너무 피곤한데 나 눈 좀 붙일게.”
아빠는 죱언 침대로 비집고 들어와 누워서는 10초도 되지 않아 곯아 떨어졌다. (이 이야기는 일기와 상관 없는 것이지만 엄마가 꼭 남기자고 했다.)
나의 부모는 진통실에서 입원실로, 입원실에서 다시 진통실로, 그리고 분만실로 갔다. 그런데 그 모든 곳에 아기를 낳는 산모는 엄마가 유일했다고 한다. 침대가 3개쯤 있던 진통실을 거의 독방처럼 썼고, 6인실이던 입원실의 대부분은 부인과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었다. 분만실에서는 엄마의 비명 소리와 나의 첫 울음소리만 메아리쳤다.
면회 시간이 가까워 오면 신생아실 앞에는 부모와 조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이곤 했다고 한다. 유리 창문의 커튼이 열리면 산모의 네임태그를 확인한 간호사들이 아기를 데려온다. 나는 그때까지 눈을 잘 뜨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내가 눈을 감고 자는 모습만 보다가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신생아실에서 나는 대여섯명의 아가들과 함께 있었다. 주인이 있는 침대보다 비어있는 아기 침대가 훨씬 많았다.
엄마 가슴에는 아직 젖이 돌지 않았지만 모유수유 연습을 위해 서너시간에 한 번씩 나는 엄마에게 안겼다. 신생아실에 딸려있는 수유실에서 엄마는 나를 안고 자신의 젖을 내 입에 넣으려 했다. 나는 입이 너무 작아 엄마의 젖꼭지를 물지 못하고 자꾸만 잠이 들었다.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엄마는 나를 살짝 흔들기도 하고, 영아, 하고 이름도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계속 잠만 잤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안고 셀카를 많이 찍었다. 수유실에 아무도 없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아기관점육아일기 #훈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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