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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주차 | 여름 손님

by 참깨


여름 손님1

나, 세상에 나온지 345일



H의 집에 놀러갔다. 벌써 H는 뛰어다닐 수도 있다. 그가 반가워서 나는 무릎으로 열심히 쫓아가 잡고 꼭 안았다. 껴안는 우리를 보고 엄마가 얘네 좀 보라며 깔깔거렸다. 내 얼굴이 H의 가슴팍에 묻혔을 때 끙,하고 이를 앙다물었다. 말캉한 느낌이 났고 아차하는 순간 H가 울기 시작했다. H의 가슴에 동그란 모양으로 잇자국이 났다. 빨간 색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아빠에게 내가 친구를 깨물었다며 이제 단단히 야단을 쳐야겠다고 말했다. 아빠가 어떻게? 라고 묻자 엄마는 고개를 숙여 눈을 치켜뜨고는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안 돼! 하지마!라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속으로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낮에 H의 집에서 물놀이를 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피곤이 과하면 잠드는 것이 더 고역이 된다. 어두운 방에서 엄마를 붙잡고 나의 피곤함을 하소연을 하다가 엄마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의 팔뚝살이 입술에 닿았을 때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다시 엄마의 살을 물어버렸다. 엄마는 아,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정말 큰 소리로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깨무는 건 안 된다고, 엄마 아프다고, 내 입술과 앞니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야단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엄마의 표정이 낯설었다. 엄마에게 안겨서 엄마인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안아주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도록 울어도 안아주지 않았다.



여름 손님2

나, 세상에 나온지 346일



사실 어제 친구 집에서 있었던 가장 큰 이벤트는 베란다 물놀이였다. 친구네집 베란다에 워터파크가 개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개구리 수영복을 챙겨 들고 나섰던 거니까. 친구 H는 풀에서 능숙하게 노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힘이 센 H가 손으로 물의 표면을 때릴 때마다 물 속에 앉아 있는 내 몸이 출렁출렁거렸다. 발장구를 시작으로 나도 본격적인 물놀이를 시작했다. H처럼 나도 물을 차박차박 쳐보았더니 물이 깜짝 놀란 것 마냥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색색깔의 플라스틱 공들이 동동 떠있는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짧은 꿈을 꾼 것 같다. 개구리가 되는 꿈.


좋은 소식이 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엄마가 큰 욕조에 물을 받아 예전에 선물받았던 물놀이 장난감을 띄워주었다. 드디어 우리집에도 진짜 여름이 시작되었다.


공놀이 시즌

나, 세상에 나온지 347일



윔블던 시즌이다. 신체 건장한 남녀들이 라켓을 들고 공 하나를 쫓아 숨이 막히도록 달린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공놀이를 우리 가족은 숨죽이고 시청한다. 나도 윔블던 시즌에 어울리는 새로운 취미를 찾은 것 같다. 테니스 공 던지고 쫓아가기다. 형광색의 공을 던지고 쫓아가고 던지고 쫓아가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온 집안을 누비고 다니게 된다. 내가 작은 사람이라 공이 굴러들어가는 가구 밑을 쉽게 들고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에 관심을 갖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난 주말 엄마 아빠를 따라 코트에 나갔었다. 그동안의 코트 나들이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나의 부모가 나를 코트에 풀어주었다는 것. 나는 코트에 여기저기 공이 널려 있는 코트 위를 마음껏 기어다녔다. 그러다 보니 공을 만지게 되었고, 던지게 되었고, 쫓아가게 되었다.


바야흐로, 윔블던의 시즌이다.



몸살

나, 세상에 나온지 348일



오후에 할머니가 오셨다. 엄마는 자러 방에 들어갔고 나는 할머니와 긴 산책을 했다.

저녁 늦게 아빠가 돌아왔다. 나는 아빠와 공놀이와 팽이놀이를 하며 놀았고 엄마는 방에 들어가 잤다.


구내염

나, 세상에 나온지 349일


아침에 소아과에 갔다. 내 생각에도 가는 것이 맞다, 밤새 열이 났으므로. 병원은 여전히 싫지만.


가슴 소리 괜찮고요. 귀도 괜찮네요. 코도 괜찮고. 아하... 입에 염증이 생겼네요. 구내염이네요. 며칠 앓다가 나을 거예요. 열이 심하면 해열제 주시고요.


하루 종일 열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약을 먹으면 조금 낫고 한숨 자고 나면 다시 몸이 으슬으슬하다. 나를 안아주는 엄마, 아빠의 몸이 차게 느껴진다.


입 안이 까슬해서 밥도 못 먹겠다. 그 맛있는 맛밤도, 복숭아, 바나나도 싫다. 물도, 이온음료도 다 싫다. 그나마 분유가 넘어간다. 1년 동안 나를 길러준 영혼의 양식 분유만.




#아기관점육아일기 #훈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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