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상에 나온지 359일
내 방이 생기고 나서부터 나의 부모는 번갈아가며 나를 재워주었다. 어제는 엄마가, 오늘은 아빠가 불을 끈 채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주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갑자기 내 옆에 없는 부모가 몹시도 그리워져버렸다. 엄마와 누워 있을 때는 아빠가, 아빠와 누워 있을 때는 엄마가 사무치도록 보고싶어 문을 두드리며 마구 울었다. 밖에서 분명 나의 울음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기척도 내지 않는 그 사람이 야속해 더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상황이 변했다. 내가 방 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까치발을 들면 문고리에 손이 닿는 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누르듯 아래로 당기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허무해져버렸던 것 같다. 벽 같았던 문이 이렇게 맥없이 열리다니. 그때부터 나는 매번 탈출했다. 울 필요도 없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될 일이었다. 거실로 나가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반가웠다. 러닝홈도, 보행기도, 식탁과 서랍도, 건조기도, 그리고 야속했던 그 사람도.
다시 상황이 변했다. 엄마, 아빠가 작전을 변경했다. 이제 한 사람이 들어와 나와 눕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들어와 내 잠자리 양 옆에 눕는다. 방 문은 훤히 열려 있다. 어차피 바깥도 모두 깜깜하다. 밖으로 나갈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나는 부모에게 공평하게 스킨쉽을 하며 뒹굴거린다. 그러면 나의 부모는 나를 사이에 두고 누워 내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낮은 목소리로 나눈다. 테니스 이야기, 음식 이야기, 최근 엄마가 본 영드 이야기, 과거에 아빠가 본 미드 이야기.
나는 가운데에 누워 양 옆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의 세례 사이에서 내가 알아듣는 낱말들과 알아듣지 못하는 낱말들을 헤아린다. 그러다보면 둘의 목소리가 개츠비의 초록 불빛처럼 깜빡깜빡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점점 희미해진다. 그리고 돌연 뚝. 끊긴다.
긴 침묵 여행의 끝은 아침.
나, 세상에 나온지 360일
오후에 부동산에 들렀다가 집을 보러 다녔다.
첫 번째 집에는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머리숱이 별로 없어 꼭 옛날의 나를 보는듯했다. 나에게 똘똘하게 생겼다고 하셨고, 먹을 걸 줄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집안 곳곳에 청소도구가 보였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깨끗했다.
두 번째 집에는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지 미끄럼틀과 자전거와 흔들말과 오두막과 풀장이 있었다. 이 집에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엄마 마음에도 들어야 할텐데.
세 번째 집에는 강아지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집안 곳곳에 강아지 밥그릇과 오줌받이와 사료가 놓여 있었다. 강아지는 어디에 있을까? 집을 둘러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우연히 강아지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 집에 사는 형아가 강아지를 데리고 계단에 숨어 있었다.
나, 세상에 나온지 361일
엄마는 테니스 레슨을 받고 오면 마무리 운동으로 줄넘기 1000개를 한다.(우리집이 1층이라 가능한 일이다.) 엄마는 줄이 없는 줄넘기, 정확히 말하면 어른 한 뼘 길이의 짧은 줄 끝에 동그란 추가 매달린 운동 기구를 양손에 잡고 돌리며 콩콩 뛴다.
아빠는 음악을 튼다. 1000번을 콩콩대는 게 여간 지루했던지 언젠가부터 엄마는 음악에 맞춰 뛰기 시작했는데 아빠가 DJ를 자처했다. 아빠는 적합한 노래가 떠오를 때마다 플레이리스트에 한 곡씩 추가해놓았다고 한다. 그 리스트가 꽤 길어서 우리는 매번 새로운 노래를 듣는다. 주로 세기말 세기초의 댄스 뮤직들.
일주일에 두 번 우리집은 디스코 플로어가 된다. 엄마는 줄을 넘으며(가상의 줄이지만) 콩콩 뛰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아주 신이 난다. 엉덩이를 들썩이거나 도리도리를 하거나 박수를 치면서 흥의 데시벨을 맞춘다.
오늘 밤 무대의 가장 높은 곳은 나의 차지였다. 미끄럼틀 위에 올라 추는 춤이라니. 꿈에 나올까 설렌다.
나, 세상에 나온지 362일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네 쌍의 아기와 엄마들이 휴게실에 잠시 앉아 수다를 떨었다. 엄마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만 마시고 일어나겠다는 내용의 말을 한 것 같은데 사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친구의 손에 들려있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까맣고 동그란 것, 과일 같기도 하고 돌멩이 같기도 한 것. 어른들은 그걸 블루베리라고 불렀다. 블루베리 주인인 친구의 엄마는 양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블루베리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나에게도 오겠지,라는 기대를 몇 번 반복 했지만 옆이 아니라 옆옆에 앉아 있던 것이 문제였나보다. 나는 끝내 블루베리를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자마자 엄마가 다시 밖으로 나가자 했다. 비도 오는데, 어디를 가자는 거예요? 엄마는 아기띠로 나를 안고 우산을 쓰고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니 너무 습해서 서로 맞댄 나의 등과 엄마의 배에 땀이 찼다. 시원한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곧장 과일 코너로 갔다. 그리고 집어든 것은 바로 바로 블루베리. 우리는 작은 팩에 들어있는 블루베리 두 팩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엄마에게서 내려 블루베리를 외쳤다. 블루베리, 블루베리! 엄마는 잠시 기다리라며 한팩을 뜯어 물에 씻었다. 친환경 무농약 블루베리라는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부르며 씻었다. 왠지 발음이 자꾸 꼬이는 것 같았지만 잇 더즌 매럴. 친환경 무노냐 블루베리. 블루베리, 블루베리!
작고 동그랗고 탱글탱글한 블루베리. 내 엄지와 검지로 집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 하지만 나는 엄마가 원하는 것처럼 예의바르고 정갈하게 집게손가락만 사용할 수가 없었다. 블루베리는 손으로 퍼서 먹어야 제맛인 것이다. 시큼하고 달지만 절대 과하지 않은 맛의 육즙이 톡톡 터져나왔다. 오, 역시 너는 정말 맛있어 보이더라니.
한 주먹, 한 주먹 먹다 보니 어느새 동이 났다. 엄마는 내가 블루베리 100g을 혼자 다 먹어버렸다며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니냐 했다. 엄마가 내 무게의 6배 정도이니, 엄마 혼자 블루베리 600g을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겁이 났다. 너무 많이 먹은 거면 어떡하지, 블루베리 과식으로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으아아 엄마아. 엄마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고 말한다. 블루베리 600g 정도는 숟가락으로 몇 번 퍼 먹으면 사라지는 양이지. 걱정 말라고, 그정도는 먹어야 블루베리 먹었다고 할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과일 탐식은 어쩔 수 없는 우리 가족의 DNA.
나, 세상에 나온지 363일
대여한 한복이 도착해서 시착을 해봤다. 보기에는 색이 곱고 예뻤는데 입어보니 너무 덥고 불편했다. 며칠 전부터는 목덜미에 땀띠까지 나서 까슬한 한복 천이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그나마 발은 편할 예정이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버선에 내 발을 넣어보려 엄마가 용을 썼지만 나의 왕발은 버선목까지만 딱 들어갔다.
그래도 내일 하루만 입으면 된다니 어떻게 참아봐야지. 레스토랑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아기관점육아일기 #훈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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