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상에 나온지 366일
오늘이라고요? 정말 오늘이 맞나요? 산도에 2시간 넘게 끼어있느라 기진맥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그 날이라고요?
정말 믿기지 않는다. 엄마의 몸에서 독립해 어엿한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좁디 좁은 산도에서 머리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나는 정말 갖은 고생을 했다. 그 때의 피, 땀, 눈물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그 사이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태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1년 전의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는 독립이 옥수수 쪼개듯 한 순간에 툭,이루어지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뭐, 어른들도 흔히 하는 착각이긴 하다. 탯줄을 자르면 독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왔으니까, 탯줄 없이도 숨을 쉬고 먹을 수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들으면 분명 코웃음 치겠지. 아니,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겠지.
러닝홈의 문을 활짝 열고 성큼성큼 기어 나와도 매일의 나는 거의 그대로이다. 나의 부모는 여전히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용변을 처리해주고, 재워준다. 나는 그 돌봄으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독립은 요원하지만 내 안에서는 의미있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제 내가 숟가락과 포크와 밥그릇을 컨트롤하고 싶다. 욕조 안에서는 씻기보다 물놀이를 하며 놀고 싶다. 옷을 벗거나 입어야 하는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재미있는 걸 찾아 움직이고 싶다.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은 모조리 ‘싶다’들로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욕망의 마음이 오븐에 들어간 식빵처럼 아주 빠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나는 일단, ‘내’가 되어 가는 중이다.
나, 세상에 나온지 367일
1.
내 생일이었던 어제 케잌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던 도중 아빠가 발목을 접질렸다. 그리고 결국 오늘 깁스를 했다. 슬프게도, 아빠는 한동안 나를 많이 안아 줄 수도 없고, 아빠 전담이던 내 목욕도 시켜주지 못한다고 한다. 슬픈 얼굴로 엄마를 돌아보았다. 아빠를 쉬게 하기 위해 책모임에 나를 데리고 다녀온, 방금 나를 씻겨준 나의 엄마는 거무죽죽한 얼굴을 하고 늘어져 있다. 각자의 슬픔이 비교 가능한 것일까 싶지만, 이런 순간에는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2.
생일을 맞으니 지난 1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른들이 새해를 맞으며 작년을 곱씹는 것도 이런 느낌일까. 아팠던 순간, 슬펐던 순간, 아찔했던 순간들이 어른거린다. 다사다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반적으로 행복했다. 그 행복들이 내 마음에 켜켜이 쌓여 매일 수백 번씩의 웃음으로 튀어 나온다.
3.
지난 토요일에는 내 생일 파티가 있었다.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이 모인, 내가 경험해 본 가장 큰 이벤트였다. 나는 예쁜 한복을 입었고 갖가지 음식들과 장식들이 올라간 생일상을 받았다. 샐러드와 스테이크, 리조또와 파스타를 먹었다. 물론 나는 엄마가 싸온 주먹밥만 먹었지만.
양가의 할머니들은 같은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성대한 파티를 원하셨나보다. 내 부모의 바람과는 다른 바람이 가까운 어른들에게 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면서 점점 더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전반적으로 내 생일 파티에 만족했다. 무대에서 어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꼭 지휘자가 된 것 같았다. 내 손짓 하나에 합창하듯 탄성이 흘러 나오고, 내 짝짝꿍에 모두들 함께 박수를 친다. 내가 웃으면 모두 같은 표정을 짓는다.
개선점을 꼽아 달라고? 굳이 말하자면, 다음에 또 한복을 입어야 한다면 조바위는 준비하지 말아 달라고 내 의견을 보태고 싶다.
나, 세상에 나온지 368일
생일을 전후하여 나는 어딜 가든 가장 상석으로 안내된다. 모든 시선들이 나에게 꽂힌다. 사람들은 한 번만 안아보자며 양 팔을 뻗는다. 눈을 맞추고 웃어달라며 끊임없이 구애의 미소를 보낸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이미 며칠 지난) 생일을 기념해 내 얼굴을 직접 보고 축하해주러 오신 친척 어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늦게 도착한 나를 위해 마련된 가장 높은 의자가 긴 테이블의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내 양 옆으로 앉은 어른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식탁 위로 고개를 쭉 빼고 내 모습을 주시했다. 식탁에 놓인 음식에 거의 귀가 닿을 것 같았다.
‘왕관을 쓴 머리는 편히 쉴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1년 인생 만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어른들을 위해 식사를 하는 중간 중간마다 웃음을 짓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기울여 예쁜짓을 하고, 도리도리를 해야 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왕관을 쓴 자에게 기대하는 애티튜드이므로.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나, 세상에 나온지 369일
퇴근하는 아빠를 마중하러 엄마와 놀이터에 나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정자 아래 평상에 내려주고 미끄럼틀을 타는 형아들을 구경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다. 그네타는 누나들, 미끄럼타는 형아들, 놀이터를 점령한 어린이들을 나는 멀찍이 앉아서 구경만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저들이 다를게 뭐람. 생일도 지났겠다, 이곳을 벗어나보자. 소파에서 기어 내려오던 실력을 백분 발휘해 엎드린 채 두 발을 평상 바깥으로 내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발이 드디어 바닥에 닿았다. 햇볕으로 뜨겁게 달궈졌다가 저녁 바람에 살짝 식어버린, 따끈한 놀이터 바닥이 내 발바닥에 닿았다.
엄마는 평상 아래에 서있는 나를 바로 안아 들고 내 발바닥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내 모험의 싹을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정자에 나를 더 이상 앉혀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안고 놀이터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안겨있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내 두 발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만 한다.
일생일대의 큰 도전을 무계획으로 치를 수는 없었다. 계획을 세우자고 생각했다. 놀이터로 진출할 계획을. 일단 목표를 정해야 한다. 처음이니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될 수 있으면 커다란 것으로. 미끄럼틀이 적합해 보였다. 거실에 있는 기린 미끄럼틀을 나는 수없이 오르내렸다. 목표가 생겼으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1. 엄마가 미끄럼틀 가까이에 다가갔을 때 뛰어 내린다. 2. 끝. 기다린다, 기다린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미끄럼틀이 다가온다. 3, 2, 1. 점프.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를 다시 고쳐 안았다. 그리고는 타 볼테면 타 보라는 듯 나를 미끄럼틀에 내려주었다. 어찌되었든 계획 성공이다. 드디어 미끄럼틀이다. 거실에 있는 계단 두 개짜리 미끄럼틀이 아니라, 엄마 키만한 미끄럼틀. 나는 내 손과 발의 적당량의 땀을 이용해 미끄럼틀에 척 붙었다. 그리고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는 짧은 미끄럼틀에서 했던 수많은 연습들은 허사가 아니었다.
정자는 이제 놀이터에서 놀던 안훈기가 잠시 쉬며 물마시는 곳.
나, 세상에 나온지 370일
생일이 지나고 나서 나에게 몇 가지 변화들이 생겼다. 첫 번째, 엄마나 아빠가 입에 넣어주는 음식은 먹고 싶지가 않다. 전부 다 내가 직접 먹고 싶다. 두 번째, 이제 진짜 칫솔모가 달린 칫솔로 양치를 한다. 칫솔 흉내를 내던 실리콘모 칫솔 안녕. 세 번째, 검지 손가락을 펼쳐서 무언가를 가리키면 어른들이 그것의 이름을 말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에어컨, 냉장고, 엄마, 아빠, 칫솔, 공기청정기, 자석, 창문, 하늘, 나무, 자동차, 그네, 미끄럼틀. 오늘 내가 가리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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