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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 없는 인생이 맛있다

by 파이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씩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언가를 잘해보겠다고 마음먹거나

완벽하게 해 보겠다고 애를 쓰면

도리어 결과가 꼬이고 어설퍼진다.


반면, 마음을 비우고 그냥 대충 해보자는 순간,

놀랍게도 일이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믿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배웠고,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살다 보니, 최선이 때론 독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잘하려는 욕심이 커질수록 긴장도 따라오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조인다. 결과에만 매달리면 과정은 즐겁지 않고, 결국 그 무게에 스스로 지쳐버린다.


반면, 기대를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면 몸도 마음도 유연해진다. 잘하려는 욕심이 없으니 오히려 집중할 수 있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임한다는 건 무성의하다는 뜻이 아니라, 과도한 집착을 덜었다는 뜻이다. 요즘 나는 이걸 ‘힘을 빼는 연습’이라고 부른다. 준비는 하되, 기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렇게 마음을 덜어낼수록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찾아온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데 집착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다. 양념도, 향신료도, 심지어 기름진 재료까지 더하고 또 더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너무 많은 재료가 뒤섞여 이맛도 저 맛도 아닌 음식이 되기 일쑤였다. 요리는 부담스러운 노동이 되었고, 나는 점점 요리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중, 건강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콜린성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졌다. 몸에 열이 오르면 붉은 발진이 올라오는 증상이었다. 응급실을 다녀온 뒤에도 세 달이 지나도록 두드러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의사는 면역력 저하와 소화 기능 약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나는 2년간 주 5일 꾸준히 수영을 하며 건강을 챙겼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음식 조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의사의 조언에 따라 몸에 열을 유발하는 음식(달고, 짜고, 맵고, 기름진 음식, 밀가루, 초콜릿, 커피, 라면, 고기)을 과감히 끊었다. 처음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어 보였다. 샤브샤브나 월남쌈 같은 채소 위주의 음식을 떠올렸지만, 이 음식들의 소스마저 달고 짜서 먹을 수 없었다. 한 숨이 절로 세어 나왔다.


“도대체 뭘 먹고살아야 하나…”


결국, 소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채소를 그대로 먹기 시작했다. 맛이 없어도 살기 위해 입에 꾸역꾸역 음식을 넣었다. 하지만 심심한 채소만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의 소스를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다. 샤브샤브를 할 때, 시판 육수 대신 물 5리터에 마늘 한 스푼, 간장 두 스푼, 치킨 스톡 반 스푼을 넣어 담백한 육수를 만들었다. 이 육수에 삶은 채소는 강한 양념 없이도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려주었다. 단순하지만, 채소의 신선함과 다양함을 느끼며 밥을 먹는 즐거움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요리에 대한 나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맛있음’이 요리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채소를 가장 자연스럽게 먹는 법’이 기준이 되었다. 약간의 맛을 더하고 싶다는 욕구는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과도한 양념이나 재료를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이 단순화된 접근은 요리의 부담을 덜어냈다.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제한되었기에, 나는 평소 외면했던 다양한 채소와 식재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햇반을 데워 반찬과 함께 먹었다면, 이제는 콩이 듬뿍 들어간 10가지 잡곡밥을 직접 짓는다. 식재료의 종류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더 풍성한 식탁을 꾸리게 되었다.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고, 그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요리는 나에게 즐거움이 되었다.


이 단순함은 요리뿐 아니라 식사 습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요즘은 소화기관에 휴식을 주기 위해 저녁 식사를 아예 건너뛰곤 한다. 물론, 매일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박적으로 “절대 안 된다”는 태도는 자칫 스트레스를 쌓아 언젠가는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저녁을 먹으며 나 자신에게 유연함을 허락한다.




“저녁에 배고프면 어떻게 해?"

"진짜 먹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


가끔 누군가는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배고픔을 즐겨. 소화기능이 고장 나면 배고픔도 못 느끼게 되는데,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위가 건강하다는 의미잖아.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배고픔은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되찾고 건강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배고픔은 나에게 전혀 고통이 아니다. 오히려 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며, 빈속으로 숙면을 취한 뒤, 다음 날 아침 상쾌한 몸 상태를 느끼는 기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 가벼움은 마치 몸과 마음이 새로 태어나는 듯한 설렘을 준다.


"진짜 음식을 먹고 싶어서 못 참겠을 땐, 음식 준비를 해."


하지만, 지금 당장 먹을 음식 준비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사용할 식재료를 다듬는 것이다. 채소를 씻고, 손질하고, 썰어 놓는 단순한 과정만으로도 내 뇌와 감정은 안심한다. “곧 맛있는 음식이 들어올 거야”라고 속이는 셈이다. 한 시간쯤 채소를 다듬고 나면, 신기하게도 식욕은 사라진다. 대신 냉장고에는 깔끔하게 손질된 채소가 가득하고, 일주일 동안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이 과정은 단순히 배고픔을 다스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나를 더 건강하고 규칙적인 삶으로 이끄는 의식이 되었다.




이 모든 경험은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때로는 더 풍성한 결과를 가져온다.


요리뿐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은 것을 채우려 애쓴다.


더 많은 재료, 더 많은 성공, 더 많은 인정.

하지만 가득 채운 삶은 종종 무겁고 혼란스럽다.


불필요한 욕심, 과도한 노력,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자,

오히려 단순함 속에서 진정한 풍요로움이 피어났다.


이 단순함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더 이상 완벽한 요리를 만들려는 부담에 짓눌리지 않았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꼭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들, 쌓아놓은 기대들, 남들과 비교하며 쫓던 목표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러자 비로소 내 안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은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할 공간이 되었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을 더 다채롭게 살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풍요로움은 더 많은 것을 쌓는 데 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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