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변화가 필요하다.
은수는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있다. 그 곳에서 그녀는 글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 다양한 글을 읽으며 성장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러나 그날 모임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은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쳤다. 그는 모임에 새로 참여한 한문 선생이었다.
“한문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꾸준히 쓰고 싶어서 이곳에 왔어요.”
그날 모임에서 은수는 한문 선생이 쓴 짧은 에세이를 읽었다. 그의 글에는 한문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고, 그 글은 마치 오래된 고서를 읽는 듯한 고풍스럽고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한문이 주는 무게감과 동시에 우아함이 은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후 몇 번의 모임이 반복 되었고, 한문 선생의 글은 은수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일깨우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 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도 그 한문 선생님처럼 단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열망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타올랐다. 그러나 은수는 스스로의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단어의 명확한 뜻과 쓰임이 혼란스러울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수는 우선 단어의 뜻을 분명하게 알아야 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 바로 눈앞에 있다. 모임이 끝난 후, 은수는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한문을 배우고 싶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는 은수를 잠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부수(部首) 214자만 외우세요." 은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그녀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3개월 동안 꾸준히 해보세요. 그러면 한자를 읽는 능력이 급격히 늘어날 겁니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은수는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부수 214자만 외우세요.'라는 선생의 말이 그녀에게는 구원의 메세지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점에 들어선 그녀는 한자 학습 책들을 둘러보다가 부수에 관한 책을 집어들었다. 그간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자가 이제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다른 건 몰라도 ‘부수 214자’ 그것 만큼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날 이후, 은수는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 특히 '앎'과 관련된 단어들을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뜻 지(志), 기록할 지(誌), 알 지(知), 지혜 지(智). 놀랍게도, 부수와 연결하니 한자가 쉽게 외워졌다. 뜻 지(志)자에 부수자 말씀 언(言)을 합하니, 뜻을 기록하는 기록할 지(誌)자가 되었다. 알 지(知)자에 부수자 가로 왈(曰)을 합하니, 아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말로하는 것이 지혜라는 지혜 지(智)자가 되었다.
한자의 조합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이번에는 욕구의 '욕'자를 공략했다. 계곡 곡( 谷)자에 부수자 물 수(水)를 합하니, 계곡 물에서 목욕하는 목욕할 욕(浴), 계곡 곡(谷)자에 부수자 하품 흠(欠)을 합하니, 배가 고파 골이져 입을 크게 벌리고 다 먹으려 하는 하고자할 욕, 계곡 곡(谷) 자에 부수자 마음 심(心)을 합하니, 하고자하는 탐욕의 욕심 욕(慾)이 되었다. 마치 은수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부수 214자'만 무작정 외우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은수는 곧 한자 공부가 예상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공부 방법을 찾은 그녀는 점점 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수 214자'의 암기는 기본으로 하고, 하루에 최소한 5자씩 새로운 한자를 외우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은수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매일 한 글자씩 집중적으로 학습하기로 결심했다.
예를 들어, '욕'자를 공략해 보자면, 그녀는 계곡 곡(谷), 하품 흠(欠), 물 수(水), 마음 심(心) 등 네 개의 부수자를 함께 외울 수 있었다. 그녀는 공부의 기준을 세우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날 배운 한자를 꾸준히 되새기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화장실에 갈 때, 이동 중일 때 등 그녀는 가능한 한 모든 시간을 한자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암기할 분량이 부족하다 느껴지면, 은수는 주저하지 않고 그날의 목표를 조금 더 늘리기도 했다. 이렇게 그녀는 유연하게 한 걸음씩,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신의 한자 실력을 쌓아갔다.
한문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수는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에도 한문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 갔다. 은수는 의구심이 일었다. 왜 그때는 포기했을까? 지금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은수는 고심 끝에 몇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그때마다 한자의 벽이 너무 높아 보였고, 끝없는 암기만이 길이라고 여겼다. 3,000자를 외우라는 말에 압도당해 포기한 적도 있었다. 중국어 공부를 해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은수에게 맞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 당시에는 뚜렷한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은수는 자신에게 적합한 학습 방법을 찾았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은수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단어를 알아야 했다. 그녀는 이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은수는 이번일을 통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도.
한문 선생과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한문 선생의 글을 몇 번 읽어 본 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선생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가치관이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한문 선생이 삶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것이나 양자역학과 다중우주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한문 선생은 은수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문이라는 길에서 이미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런 선생의 말을 은수가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은수는 이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한문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각성하고, 매일 조금씩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녀는 한자 공부를 즐기며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롭게 자신만의 속도로. 이제 은수는 더 이상 한자의 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그 길 끝에 그녀가 꿈꾸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