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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오모스 Oct 14. 2024

# 8-1_손글씨에 스며들다.

손글씨의 매력에 마음이 동한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방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시간에 눈을 떴다. 기분 좋은 빛이 나의 하루를 감싸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오늘도 나는 손글씨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침대 옆에 놓인 작은 노트를 꺼내어 책상 위에 펼치고, 연필을 손에 쥐었다.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부드러운 감촉이 나를 안정시키는 듯했다. 이 느리고 고요한 순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손글씨를 쓰는 동안,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에서, 손글씨는 나에게 유일하게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었고, 이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집중력을 되찾는 은밀한 연습이었다. 화면 속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정보들이 아닌,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어김없이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메일을 확인하거나 뉴스를 읽는 사이,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곤 했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쓰려할 때면 이미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머릿속은 산만해져 버렸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은 하루가 끝날 즈음, 어김없이 자책감이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글을 쓰는 게 힘들기만 할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왜 집중이 안 되는 걸까?' 그 순간, 문득 손글씨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빼곡히 써 내려가던 손글씨들, 편지지에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던 순간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때의 자신은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단순히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옮겨 담았다. 그 즐거움이 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다시 연필을 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손글씨를 쓰는 동안 다른 모든 생각들이 차츰 멀어져 갔다. 눈앞에 펼쳐진 공책과 그 위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글자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손글씨는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손글씨의 매력은 느림에 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손글씨는 오히려 나를 기다려주었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글쓰기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내가 진정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손글씨는 내가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도록 도와주었다. 

어떤 날에는 글씨가 예쁘게 잘 써졌다. 감정이 정리된 날에는 글자들이 한결 정돈되어 보였고, 나는 그런 날의 글쓰기가 특별히 더 즐거웠다. 반면에, 마음이 불안한 날에는 글씨마저도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날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손글씨는 그 자체로 그녀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손글씨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집중력을 손글씨를 통해 경험하게 된 것이다. 손글씨를 쓰는 동안, 나는 오로지 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종이에 새겨지는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력을 강화해 주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종종 손글씨를 쓰는 자신을 관찰하곤 했다. 손끝에서부터 글자가 종이에 새겨질 때, 나는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를 넘어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음을 느꼈다. 손글씨는 생각보다 느리게 써지지만, 그 느림 속에는 인간의 본질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생각이 아무리 빨라도, 육체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손글씨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는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아무리 정신이 빠르게 움직이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흩날리더라도, 손글씨를 쓰는 동안에는 육체가 그 흐름을 붙잡아 준다. 마치 자석처럼, 정신이 이리저리 떠돌다가도 결국 손이 써 내려가는 글자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어떤 내적인 충동에 이끌리더라도, 손이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는 한, 정신은 다시금 그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신, 감정, 신체가 일치된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스트레스 없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손글씨가 바로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를 손쉽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었다. 신체인 손은 글씨를 쓰고, 정신은 써야 할 내용을 떠올리며, 감정은 글 속에 담긴 이야기와 공명하게 된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이 조화롭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감정도 자연스레 따라오게 마련이다.


오늘도 손글씨의 매력에 조용히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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