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들에겐 정말 희망이 있을까?

당신은 아이를 호랑 애벌레로 키우고 있나요 노랑 애벌레로 키우고 있나요?

by 맑은눈빛연어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비효율성을 견디는 것이 최선일까?"

모건 하우절의 책 《불변의 법칙》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비효율성'을 혐오하면서도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톱니바퀴처럼 끼어 돌아가게 되는 학부모의 삶은 비효율성의 끝판왕이다.


중3이자 예비 고1이 된 아이의 세상은 아수라장이다. 점입가경이라고나 할까.


세상은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고, 그저 '완성'을 향해 정진해야 하는 곳인데 대한민국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완벽과 완성을 무차별적으로 요구한다.


거기에 부모는 거드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게 못내 답답함에도 아이에게 가장 알맞은 학교를 찾아주기 위해 온-오프라인 입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게다가 잠춘기로 2년을 보내던 아이는 드디어 각 잡고 공부를 하며 '입시 읽어주는 엄마'가 되어달라고 요구까지 한다.


책 쓰기는 안드로메다로 갔고, 불철주야 아이 지원에 팔 할은 쓰는 것 같다.


덕분에 물건을 비우고 정리하는 일에 소홀했다. 마치, 땅에서 자라는 잡초를 주기적으로 깎지 않으면 어느새 내 키만큼 자라 쑥대밭이 되어버리듯 용도가 불분명해 '내 방'이라 쓰고 있던 현관방은 잡동사니로 무성히 채워지고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방을 지저분하게 쓴다던데 우리 집 아들은 다르다. 극도의 깔끔함과 정돈을 추구한다. 엊그제 일명 잡동사니방에 쓱 들어오더니 하는 말 "엄마, 이게 방인가요? 좀 치우죠."라는 말은 무척 자극적이었다.


매사 말직구를 날리는 아이. 늘 나를 당황하게 한다. 그럼에도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어제는 종일 땀 흘리며 정리 정돈이란 걸 했다.


결과는 대성공. "설마 물건을 다 버린 거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바뀌나?" 하며 남편은 반신반의의 눈빛이었다. 겹겹이 쌓여있던 대형 바닥 매트와 대형 칠판으로 막혀있던 창문이 뻥 뚫렸다. 안그래도 벽 한쪽은 대형 펜트리에 가까운 붙박이장이라 작디작은 방.


그러나 정리정돈의 힘은 위대했다! 여유로운 공간이 생겨 거실 한쪽에 늘 애매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아이의 비올라와 악보 보면대가 간만에 함께 다정히 서 있게 됐다.


어릴 적 아이가 쓰던 책상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다. 이 작은 책상 위엔 노트북, 읽고 있는 혹은 읽다가 만, 앞으로 읽을 책들이 수북이 놓여 있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스무 장쯤 되는 포스트잇은 절반으로 줄었고, 한동안 방치해두었던 '다이어리 캐시 북(일기와 가계부 합체본)'은 북스탠드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KakaoTalk_20250610_190707712.jpg?type=w773


아직은 선선한 초여름의 낭만적인 바람이 일렁이며 다가왔다. 선풍기는 1단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고, 거실 너머 바라다보이는 한강 풍경이 오늘따라 더 근사하게 보였다.


역시, 정리 정돈의 힘이지 ㅎㅎㅎ


KakaoTalk_20250610_173827484.jpg?type=w773


다시 모건 하우절의 문장을 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 더 똑똑한 예측이 아니라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아이에게 가장 알맞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더 많은 정보와 더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허울 좋은 것들은 과감히 빼야 한다는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책 <꽃들에게 희망을> 스토리가 생각났다. 숱한 경쟁과 모진 시간을 견디며 기둥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된 호랑 애벌레. 반대로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향해 떠난 노랑 애벌레가 말이다.


나는 내 아이를 호랑 애벌레로 키우고 있는지, 노랑 애벌레로 키우고 있는지.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저릿했다.


부모인 나는 아이에게 변하지 않는 '참'을 찾을 수 있도록 먼저 나의 '참'을 찾고 그릇되지 않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대입도 아닌, 고입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던 하루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