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만난 ‘소년이 온다’
인권 독서 모임 추천도서인 ‘소년이 온다’를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했더니 다음날 도착이 됐다. 겉봉을 뜯어다. 초록색 바탕에 잔잔한 들꽃이 새겨져 있는 ‘소년이 온다’에서 풀 냄새가 나는 듯했다. 1980년 여름 뙤약볕 아래 숨 죽어 익어가던 슬픔 가득한 그 냄새가 책에서 나는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펼쳤다. 그날의 ‘너’를 만나며 가슴은 답답해졌다. 그날의 일들이 차라리 작가의 지적 허영을 채워줄 소설이었으면, ‘허구’니까 라면서 가볍게 읽었을 것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을 뿐, 내 고교시절 한 장면이 녹아든 사건이었기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그날의 모습을 그리듯이 읽어 내려갔다.
1980년 5월 18일, 단지 광주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폭도’로 내몰려 그 엄청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무수히도 많았던 ‘너’, 난 운이 좋아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너’를 둘러싼 인물들처럼 ‘나’와 ‘내 친구’의 일상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너’와 다름없었다. ‘너’의 누나처럼 내 ‘언니’또한 미싱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내 친구들 또한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기에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일 수 있었다.
1980년 이곳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다. 난 산골에서 대전으로 유학을 나와 실업계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홀로 슬픔에 취해 있었고, 남겨진 어머니를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좋은 곳에 취업하여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릴까를 생각하는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조용필의「창 밖의 여자와」와 「단발머리」로 내 삶의 위로를 받으며 등굣길을 오갈 때, 집 앞에 나와 있던 아주머니들의 소곤거림을 귀동냥으로 간간히 듣기도 했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대학교 언니 오빠들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연일 데모를 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나’의 눈에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며 행복에 겨운 투정을 하는 것쯤으로 보였었다. 그것이 수많은 ‘너’의 죽음, ‘너’의 고향 사람들의 학살과 관련된 일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졸업을 하고, 직장인 되고 나서야 알았다. 네 몸이 백골이 될 때까지 너의 죽음을 알지 못했지만 ‘너’의 마을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진실은 참으로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너는 네 친구 정대가 총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다. 그 평화로웠던 광장에서 정대는 총에 맞아 쓰러졌고 너는 달아났다. 너는 네 눈앞에서 죽어간 정대의 죽음을 현실로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를 버리고 혼자 달아난 비겁함을 용서할 수 없어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전남도청 상무관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형과 누나들을 도와 총에 맞아 실려 온 시신들을 닦아주고, 덮어주고, 유족들에게 확인시켜주는 일을 하다 너는 총에 맞아 죽었다.
‘너’들은 폭력 앞에서 쓰러져갔다. 계엄군의 진압에 상무대에서 만났던 형과 누나들, 너의 친구 정대, 그의 누나 정미 등 수많은 시민군들이 그곳에서 희생되었다.
억울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피를 흘려야 했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너’는 혼령이 되었다.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도대체 왜 죽였냐’고 말이다.
‘너’의 억울한 죽음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은숙 누나, 진수 형, 선주 누나, 그리고 너의 어머니의 삶 또한 죽음보다 더 잔혹한 생이었다. 네가 좋아했던 진수형은 극렬분자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석방된 후에도, 고문 후유증에 고통받으면서 살아가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선주 누나 또한 도청에서 잡혀간 후 빨갱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성고문을 당했다. 너의 작은형은 도청에서 너를 데려오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 너의 어머니는 ‘저녁에 집으로 갈게’했던 너의 말만 믿고 형의 손을 잡고 돌아갔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평생을 자식을 죽음 속에 놔두고 왔다는 죄의식에 눌려 죄인처럼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너’들이 고통 속에 살아갈 때, ‘나’들은 먹고 산다는 핑계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왔다.
벌써 서른여섯 번째 오월이 지나갔다.
염치를 딛고 서는 풀잎처럼 거대한 군부세력에 맞섰던 너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평범한 ‘나’들은 민주주의를 배웠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목숨을 바쳐 싸운 ‘너’들과 비인격적인 대우를 참아낸 또 다른 ‘너’들로 인해 평안하고 발전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도 국가로부터 외면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은 없는지?, 1980년 5월의 광주처럼, 아니 ‘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