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만 하려할 뿐 학교개혁운동의 나아갈 바를 바라보지 않는-
청소년인권운동의 학교상륙은 여전히 한국교육의 주요명제이다.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2010년 이래 13년이 지난 현실에서 14개 시도의 진보교육감들이 스치고간 한국의 공교육에서 인권조례가 서울,광주,전북, 충남에 머무른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인권운동의 실패이고 현주소이다.
그런데도 인권운동 주체들의 성찰은 너무도 빈약하고 여전히 계몽적 비평에 머무른 듯하다.
자신들의 한계를 말하기보다는 한국공교육의 낙후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인권조례를 확산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실패라고 말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례만 관철하려할 뿐 인권친화적 학교의 가능성과 방도를 깊이 열지 못하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인권학교운동의 성패를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학생인권조례를 말하고, 학생인권법을 말한다.
진영론에 기대어 상품화하는 것에 성공했을지는 모르나 12개 시도는 고사하고, 조례가 안착한 5개 시도의 학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하였는지 제대로 판단하고는 있는걸까?
예상했던 학교현장의 과제들이 숱하게 드러났지만 과연 그것에 답하는 운동과 실천은 있었던가?
이럴거면 학생인권조례보다 개별 사안에 대한 청소년인권운동을 확산시키는 것을 우선하여 실천했으면 어떠했을까?
인권운동이 교육운동, 학교개혁운동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인권운동의 우산 아래 학생인권조례라는 통합세트로 학교를 뚫으려하는 것에서 무엇을 놓쳤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인권조례는 제도적 상품이지만, 인권은 철학이고 인간관계의 사상이며 사회운영의 원리이다.
인권은 교육의 철학과 사상으로 더 깊이 스며들었어야 하고
인권운동은 학교운영의 철학과 학교내 인간관계의 교육력에 대해 더 깊이 담론을 확장했어야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전면에 내세운 인권운동의 전선은 확장하지 못하였고 세부적 과제와 실천으로 분화하지 못하였다.
인권운동의 주체들은 학교혁신과 교육개혁의 속살을 파고들며 더 많은 담론들을 파생시켰어야 하지만 호흡은 짧고 앙상하기만 했다.
청소년인권운동 주체들의 자기 책임에 대한 평가가 절실한 때이다.
또 함께 연대한 교사운동, 학부모운동, 교육운동의 주체들 모두의 진지한 성찰과 진단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이다.
유체이탈 화법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의 슬로건만 동조하여 외칠 뿐, 교사와 학부모, 교육주체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더 구체화하고 섬세하게 다듬을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게으른 것 아닌가?
조례만 관철하고, 진보교육감의 슬로건에 봉사하면서 진보권력으로 학교를 짓이기려 할 뿐 정작 학교에서 시작해야 할 대부분의 고민들은 진전없이 맴돌고 있다.
다수의 합리적 교사들과 진실한 학생들이 인권학교를 공감하고 절실히 요청함에도 부딪히는 딜레마와 넘어야 할 벽에 대해 막막해하는 것을 왜 외면하고 계몽만 하려 하는가 말이다.
(2023.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