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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솔 Feb 13. 2017

<컨택트>, 언어의 시간

숭고한 소통

※ 스포 있으니 참고하여 읽어주세요

출처: 영화 컨택트

숭고의 산물, 컨택트

여운이 짙은 이 영화를 짧게 말하라면 '숭고'란 단어를 던지겠다. 언어, 영상, 의미, 음악 모든 것에서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절대적인 크기 앞에 두려움을 갖는다. 예를 들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광활한 자연 광경이나 인간의 몇 십배 혹은 그 이상인 인공물 앞에 섰을 때다.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경외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지할 때, 안도감을 느끼며 미적 황홀감에 벅차오른다. 불쾌함이 쾌감으로 바뀌는 순간의 이 감정이 바로 숭고다. 칸트가 내렸던 정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컨택트야말로 완벽한 숭고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선이나 외계 생명체는 우리를 무서움에 떨게 하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을 거다.




소통의 지혜

갑자기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나타난 12개의 거대한 돌덩어리. UFO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쉘(우주선) 앞에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외계인들은 18시간마다 문을 열어주는데 미국은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언어학자 루이스와(감성) 물리학자 이안(이성)을 합류시킨다. 대원들과 루이스, 이안이 경계의 옷을 무장하고 쉘로 들어서면서부터 외계인과 처음 마주하기까지의 영상에 숨이 턱 막혔다. 웅장하고 날카로운 음악은 인간의 두려움을 그대로 가져와 보는 이를 장악시키고, 장르적 영상미는 엄청난 긴장감을 주었다.


루이스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지구에 온 목적'을 물어볼까? 그녀는 지혜를 발휘한다. 답을 얻으려면 물음이 있어야 하고, 물음을 이해시키려면 의미를 설명해야 하고 설명은 그 언어를 알아야만 시도할 수 있다. 고로 언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대화,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태초에 인류가 소통을 시작해온 과정과 같다. 하지만 소통의 역사엔 늘 전쟁이 있기 마련이었다. 쉘이 등장한 뒤 세계는 이미 알 수 없는 존재를 적으로 인식하고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외계에 맞서 먼저 방어하고 공격하려고 데려온 언어학자에게 천천히 언어를 교환하고 소통할 시간을 내줄 리 없다. 과연 그녀는 외계인들과의 소통에 성공할 것인가.




헵타포드와 시간의 강

언어는 인간의 산물이다. 처음 문자를 만들어 습득하고 규칙을 정하고 다듬고 고치고 싸우고 타협하고 수정해 또다시 만들면서 쌓아온 시간의 역사다. 루이스는 HUMAN(인간)으로 외계인과의 역사를 시작했고 그들의 언어 헵타포드를 얻었다. 비슷비슷한 동그라미로 이뤄진 헵타포드어는 우리가 간과하던 언어와 시간의 상관관계를 집합시켜놨다. 오늘 사용한 소리와 문자는 어제의 어제의 아주 어제에서 흘러왔고 내일로 흘러간다. 이 리뷰조차도 과거에서 와 쓰이고 미래에 읽힌다. 헵타포드어가 바로 이러한 시간의 강이다. 감히 그 길이와 크기를 가늠하려 하면 두통이 와버린다. 루이스는 시간의 강을 습득하면서 엄청난 두통을 겪는다. 알 수 없는 아이와 본인의 경험인 듯한 장면이 꿈과 일상에 떠다니고 외계인이 직접 눈 앞에 나타나는 환각을 보기에 이른다. 이것은 시간의 강에 있는 배를 타는 과정이었고, 루이스는 배의 주인이 됨으로써(언어 습득) 시간의 흐름까지 볼 수 있게 된다.(미래를 알 수 있음)




루이스가 품은 것

에이미 아담스의 루이스는 관객을 참 편하게 만들었다. 지구의 것이 아닌 모든 것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경외와 성취를 참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루이스는 마지막까지 슬기롭다. 마침내 시간(=언어)을 얻게 됐을 때 그녀는 미래에 존재하는 좋은 감정들만 골라 유리한 삶을 살거나, 엄청난 양의 감정을 감당 못해 자칫 미쳐버릴 수 있는 이 어마 무시한 능력을 다룰 줄 안다.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즐거움과 고통을 미리 아는데도 현재의 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행복할 방법이다 :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두 남녀가 사랑을 택하며 현재의 행복을 받아들이는 엔딩과 닮았다. 루이스는 딸 이름을 앞뒤 순서가 똑같은 HANNAH로 지었다. 시간을 품어 사랑을 낳은 것이다.


컨택트 포스터의 문구처럼 이 영화는 이제껏 보지 못한 SF임이 틀림없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솟구친 뒤에 오는 묘한 벅참을 컨택트로 경험해 보자.



*참고 도서 :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_박정자의 노마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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