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무렵, 집에 뚱뚱한 컴퓨터 한 대가 들어왔다.
아빠가 큰돈을 들여 사주신 그 기계는 아마도 디지털 시대를 예견하신 아빠의 투자였던 것 같다.
아빠는 내침김에 학교에서 열리던 컴퓨터 특별수업에 등록시켜주셨고,
나는 윈도우를 켜고 끄는 법, 타자 연습, 그리고 ‘한글(hwp)’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웠다.
hwp와의 첫 만남이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hwp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리포트, 논문, 연구계획서까지, 문서의 기본 확장자는 hwp였다.
내가 hwp라는 확장자를 의식적으로 자각한 건 아이폰을 쓸 때였다.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한글’ 문서가, 정작 휴대전화에서 열리지 않는 경험은 충격이었다.
따로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고, 그마저도 광고 투성이였다.
갤럭시로 갈아타면서 한동안은 다시 편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마저도 제약이 생겼다.
유학생들에게도 hwp는 장벽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한국어’와 레포트 제출을 위한 ‘hwp 사용법’이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확장자가 허용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문서 작업의 대세는 hwp다.
문제는 해외 협업에서였다.
해외 연구자들에게는 hwp를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고, 공동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유료로 구독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구글 문서와 word로 이동해야만 했다.
익숙한 hwp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협업의 필수 조건이었다.
돌이켜보면 hwp는 단순한 문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제도와 권력의 언어였다.
논문, 연구계획서, 행정 문서까지, 연구자와 학생을 묶는 일종의 ‘규칙’이자 ‘관습’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협업의 장에서는 오히려 배제와 단절의 도구로 작동했다.
hwp는 내게 여전히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익숙함이 언제나 연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서를 쓰고 어떤 언어로 협업할지의 선택은, 결국 우리 모두가 짊어진 작은 정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