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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Jun 05. 2019

주름살

주름 살

잠든 아내의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하다. 마른논바닥 같은 그곳엔 구석구석 크고 작은 주름이 떼를 이루고 있다. 이마를 가로지르는 주름과 잔주름들이 다투어 피어 있다. 마주 볼 땐 몰랐는데 잠든 얼굴에선  더욱 선명하다. 어떤 주름은 분절음처럼 뚝뚝 끊기기도 했고 어떤 주름은  이랑처럼 골이 깊다. 언젠가 보았던 엄대 같았다. 

엄대는 옛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사용하는 외상장부다. 아는 반찬가계나 동네가계에서 외상 거래할 때 물건 값을 표시하는 길고 짧은 금을 새긴  막대기를 말한다. 엄대에다 들여놓은 물건의  분량만큼 금을 그어 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을 했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는 문맹 인들에게 외상장부 역할을 때신 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 전라도 지방 시골 구석구석까지 생활문화 탐방 시에 엄대를 본 기억이 새삼 새롭다. 흙벽 부엌은 물론 바깥벽까지 금을 그어 놓았다. 

흙벽에 부지깽이로 그은 흔적이 빼곡하게 남아 있다. 일반손님과 뱃사공들의 외상장부를 서로 다른 곳에 표시한 것이 특이 했다.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을 적 이곳은 많은 길손들의 휴식처였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하여  아침에 배달된 막걸 리가 저녁이 되기도 전에 동이 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선술집 단골손님들은 외상이 다반사였다. 주모들은 대게 까막눈이라 글자를 읽지도 서지도 못하니 벽이나 종이네 마신 술잔의 수만큼 길게, 짧게 작대기를 그었다. 엄대가 외상으로 술을 마시거나 물건을 사는 것을 “긋는다.”고 하는 지금의 말이 시초라고 한다, 요즘은 “쏜다.”로 젊은이 들은 사용하고 있다. 아내의 주름은 무수한 세월이 그어 놓은 인생의 외상장부다. 

그 금은 가족이 생계를 위ㅎ서, 평생의 직장이었던 양재점에서,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생긴 주름일 것이다. 나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생의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두 아들과 생사를 이별 할 때 주름은 더욱 더 큰 주름이었을 것이다. 

연년생 아들을 키우려고 양재점 단칸방에서 구술 땀을 흘려야 하는 한 여름에도 선풍기 한 대로 견디어야하는 젊은 시절에  오직 끈기하나로 버티어온 흔적이 주름 상일 것이다.

그렇게 힘겹게 견디어 오며 대학, 직장, 결혼, 아파트장만 등으로 인생여정의 절정에서 하루아침에 독한 위선이 우리가족모두를 삼켜버리 듯, 인생연극은 위로 두 아들을 대려가 버리는 . 잘못된 인생각본이 되었다.

이것은 인생극장의 시나리오가 에러가 난 것이다. 여기에는 눈물, 슬픔, 동정 등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막장 시나리오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 왜 주름이 안 생길 수 있는가!

노년이 되어 땅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곳곳에 발품을 팔다가 원하는 대지를 찾았다.

앞에는 자연원색의 생태가 보이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그야말로 배산임수 명당이었다. 계약과 동시에 땅값을 완불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마음이 부풀어 설레기 시작했다. 

아내는 자연 셈을 이용한 연못까지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땅을 판 주인은 돌연계획을 취소하였고, 노후를 전원생활로 보내려던 아내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도 굵은 주름이 하나가 덧붙였을 것이다.

아내는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얽매이기도 싫어하지만 간섭받기는 더욱더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이들을 대하듯 매일 했던 말을 또 하며 잔소리를 했다. 걱정에서도 보다 나의 좁은 천성이다. 신중해라, 운동해라. 조심해라. 외식을 많이 하지 마라. 등등 돋기 싫은 말들을 녹음기 틀 듯 반복 했다. 처음에는 다툼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체념한 듯 반응이 없다. 내가 퇴직한 후부터 언제부터인가 내가 해오던 일들이 아내의 몫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나는 군데군데 고장 난 시계가 되어 버렸다. 

목 디스크 도 생기고. 팔까지 저릿저릿 한다. 허리도 시원치 않아 구부려서 하는 일 또한 힘들다.

협조보다 협조 받는 것이 당연하듯 살고 있다. 텃밭일이나 무거운 것은 못 드니 소소한 일은 아내 몫이다. 마당 빌어, 봉당 빌어 안방차지 한다는 말처럼 집안일 대대 분을 맡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불만이 많겠지만 내색을 않는다. 내가 하여야 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고맙다는 생각은 앞서지만 그 말이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어쩌다 조금 거드는 날은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안마까지 부탁해야하는 처지임으로 아내가 손사래를 하면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말린다. 

솜에 물 스미듯 이제는 아내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요즘이의 나는 아내에게 떼 주름을 긋고 있는 것 같아 볼 때 마다 미안 한 마음이 든다.

곤히 잠든 아내 코고는 소리가 감사와 안쓰러움의 소리로 들린다. 주름은 살아온 흔적이라지만 나보다 두 살 밑인 아내는 내보다 주름이 훨씬 많아 보인다. 

저 주름들 하나하나마다 그의 역사가 음각 되어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어진 금은 실은 나와 가족. 그리고 세파에 의해서 만든 것이다. 

자식들의 속을 썩일 때마다하나 생기고, 내가 잔소리 할 때마다 하나, 그렇게 우리가 그어놓은 금들은 주름으로 주막집 빛처럼 선명히 새겨진 것이다. 

엄대 같은 얼굴을 보며 남은 세월은 그동안 아내에게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잔소리도 줄이고, 내 위주가 아니라 그를 위한 삶을 살리라. 가로금 위에 세로금을 그어 빚을 지웠던 글자모르는 주모들의 외상장부 엄대 금 긋듯 아내의 얼굴 주름을 하나 둘씩 지워주고 싶다. 

주름이 지워질 때마다 아내의 활짝 웃는 얼굴이 주마등처럼 아롱거린다. 지금 잠든 아내의 얼굴이 어느 호수의 햇살 고요한 수면처럼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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