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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Nov 30. 2017

마음

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알 수 없는 말은 “마음”이라고 생각 된다. 가장 친숙하고 다정한 말이면서도 가장 낮 설고 엉뚱한 단어다. 가장 가까운 말이면서도 가장 먼말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도 인간을 지배하고, 보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한가운데 있다. 형체도 없으면서 가득 차 있고, 수시로 변하니 알 수 없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숨 쉬는 심장에 있을까? 아니면 생각하는 뇌에 있을까, 실체일 듯하지만 증명할 수 없고 논리나 과학으로 설명 할 수 없다. 마음은 영혼의 거울인가, 생각의 분수일까, 감정을 담은 그릇일까, 존재의 그림자일까,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하지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실재인지, 부재인지, 알 수가 없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객관적인 내가 주과적인 나를 들여다보는 것인지, 또한 누구인지, 모를 깊은 안개 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우리 마음 속에 새기며 되 씹어야한다. 루소의 말이다. 아음은 다듬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은 어디엔가 있어서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 희비애락을 불러오고 그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20여 년 전 나는 통도사에서 月下스님을 만난적이 있다. 월하 스님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라”고 하셨다. 일시적인 옷에 불과한 육체에 신경을 쓰지말고 영원한마음을 갈고 닦는데  힘스라고 말씀하셨다. 육체는 한시적인 옷과 같아서 소멸하고 말지만 마음은 영원하다고 하셨다. 

인도의 명산가슈리 아나말라이 스와니 생각은 다르다. 그의 <마음은 없다>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마음은하나의 그림자에 볼과 합니다. 그것을 붙잡아 제어 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그림자이며, 그대가 어디로가든 그대 곁을 다랄 올 것입니다. 그것을 없애거나 제어 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그것을 제어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성공 할 수 없습니다. 

스와니는 “진아(眞我), 깨달음(self-realisation)이 일어 날 때는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한다. 깨달음은 마음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알 때 일어난다고 한다. 마음의 부르는 무상한 그림자의 실제성과 실체성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버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하다. 

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의 몸과 마음에 갇힌 유한하고 한시인 하나의 개체라는 것은 자신의만들어 가는 환상이며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마음이란 만물에서 나오는 것으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이나 구원이란 자기가 개체‘아무개’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는 것이라 한다.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마음을 닦으라는 분이 있고, “마음은 없다. 마음을 버리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자기라는 한정된 몸과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야 영원을 얻게 된다.” 는 분이 있으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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