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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Jan 16. 2018

에이지즘(ageism)의 바람

에이지즘(ageism)의 바람

나이를 드는 게 어쩐지 부끄럽거나 심지어 비난받을 짓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게 요즘의 세태다. 연령차별이 일상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에이지즘” 용어는 1969년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가 노인뿐만 아니라 나이 드는 것 자체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기 위해 처음 썼다. 

성(性) 차별이나 인종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았지만, 노인에 대해선 “힘의 없고, 지적, 성적(性的) 능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 의미지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존중하기보다 부양해야 한다는 짐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 이후 국내 일부 뉴스와 토론 게시판에선 ‘65세 이상 투표 금지’ 가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노인들의 누릴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는 주장이 나온다. 젊은 층의 분노와 좌절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의 원망도 일경 이해될 법하다. 하지만 이런 연령 차별적 행태는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누구도 시간의 수레바퀴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 벨리콘 기술 전문가 중엔 나이가 들어 보일까 봐 보톡스를 맞거나 모발을 이식하려는 자가 꽤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에이지즘’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에이지즘’이란 연령에 따라 차별을 뜻한다는 의미로 설명된다.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구글, 페이스 북이나 링크드인 등은 직원의 중위 연령(median age, 중간 나이)이 20~30 세일만큼 젊은 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면 코딩과 프로그래밍 능력이 중요하지 나이가 문제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자 애플 화이트는 지난 9월 뉴욕타임지에 에이지즘 실태를 알리는 기고를 했다. 이 글에서 소개된 엔지니어는 애플에서 21년 근무를 마치고 애플 제품을 수리하는 서비스센터에 재취업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엔지니어는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설득해 맥(Mac) 컴퓨터에 탑재한 IBM 파워 PC 대신 인텔 프로세서를 적용하게 해 맥의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끓어 올리게 한 주인공이었다. 재취업에 실패한 그는 “나이 빼놓고는 떨어질 이유가 없다.”며 슬퍼했다는 것이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울 속에서 눈가 주름살을 하나 찾아내거나 어느 날 문득 한 올 도드라진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쓴 노라 애프론은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다.”라는 책에서 자글자글 해진 목주름이 보기 싫어 성형외과에 갔다가 얼굴 전체를 손 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좌절했던 심정을 고백한다. 일을 땐 무심히 지나쳤는데, 2018년의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애프론 경험이 내 미래 같기도 하다. 

오십을 꺾어진 한 족이라 좋아하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고 주위에서 반어적으로 축하해 주던 젊음과 건강은 그 날 허공에 흩어진 박수 소리만큼이나 멀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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