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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Oct 25. 2018

사랑의 민주화

사랑의 민주화

눈결에 담긴 아내의 향수를 본다. 먼 하늘의 구름처럼 잔잔히 떠가는 추억을 아내는 다듬는다. 나는 가만히 그의 심혼을 엿본다. 우리가 겪는 삶 속에는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추억하며 살고 있다. 정신세계에 깊숙이 침투되었던 연혼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다. 

잊는다는 것은 안정과 평화를 의미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가슴에 옹이로 남는다. 옹이에는 기쁨이나 행복으로, 또는 추억으로 어리는 것도 있지만 괴로움이나 아픔을 주는 영혼도 있을 것이다. 

아내는 산책길에서, 또는 식탁에 마주 앉으면 지인들에 관한 것이나 일상의 사사로운 얘기를 나누게 된다. 

아내는 어느 한 옛날 연인의 이름을 가끔 올일 대면 어색하고 긴장 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흘러간 물래 방아 물이지만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다. 젊은 날 결혼을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연인의 추억이 연민으로 나타고 있다고 추정을 해본다. 

나의 아내는 그분과 아픔을 문 채 나와 처음 마났던  그날 그 얘길 나에게 털어 놓고 고백을 했다. 나와의 만남도 이성으로서 사귐을 전제로 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기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연애사건을 고백 했을 것이다. 그런 그와 문학 지망생으로 <사상계> 월간잡지만 열독을 하던 내가 어찌어찌 하여 운명통로에 따라 부부의 인연을 맺었지만 …… 그렇지만 지금은 후회는 없다. 

그분의 삶이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아내는 그분의 소식을 들어서인지 그분의 결혼 얘기며, 어느 해 그분의 신춘문예 등단 소식을 듣고 축하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아내와 같은 고향이고 동문이다. 그 분을 주변 친구들 간에 몰랐던 사람이 없을 만큼 소문이 떠돌았던 것 같다. 

그분을 아는 지인들과 친구들이 같이 모이면 내가 저리를 조금 비우는 동안 그 분에 대한 얘기를 몰래 나누는 눈치를 여러 번 겪었다. 내가 들어오면 소근 대던 말소리가 뚝 그치곤 했다.

그 분과 아내의 사랑은 반세기가 지난 역사지만 아내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바람이 이는 때가 가끔 있는 것 이다. 정말 멋지고 존경스럽고 인간승리의 예술이다.

지금도 아내는 그분의 소식을 종종 바람결에 듣기를 좋아한다. 그분의 이름을 말할 때는  긴장과 설렘이 섞여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분도 아내의 소식을 듣고 그럴까? 아니면 어디선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삶의 소식을 들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분과 아내의 과거사랑은 얼마나 순결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잊히지 않은 한편의 시처럼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것뿐이다 잊을 수 없는 연정을 하나 간직하고 늙어 가는 것도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연두 빛. 연혼에 물든, 잊을 수 없는 촉촉한 추억일 것이다. 이것은 시샘 할 것이 아니라 값진 추억가진 멎진 인생의 삶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남녀 간의 만남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어서 애틋함도, 깊은 정도 없는 손해와 이익만을 계산하는 시장으로 변해가는 요즘이다.

문자메시지로 통신하고, 휴대폰으로 사진 교류까지 단숨에 이루어진다. 이성간에 신비스러움도 우리들의 소싯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요즘 사람들은 원나잇스텐다드(one night standard)를  사라들을 바보 취급하는 요즘이라고 한다. 우리가 소싯적에는 얼굴도 모르는 이성과 펜팔로 열렬히 감정의 무늬를 그려보는 일이 고작이었다. 

편지를 쓸 때면 백주에도 “별빛이 찬란한 밤에 편지를 쓰노라.”는 유치한 거짓말로 곧잘 늘어놓곤 했었다. 온갖 미사여구와 슈베르트의 고전음악을 들먹이며 유식한 체해야 사랑의 편지 한통이 완성되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단장을 기다리는 일은 더없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 펜팔편지가 부모에게나 선생님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이성간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에너지가 충전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그런 펜팔과 직접 만나기라도하면 십중팔구는 끝을 맺었다.

아내 역시 처녀작 시를 처음 써서 그분에게 보낸다는 말을  아내 입에서 직접 들었다. 결혼도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시를 쓰기위한 연애였을까? 아니면 연애를 하기위해 시를 쓴 것일까? 나는 모른다. 그분과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아마도 시인들의 시만을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모든 분홍빛 추억을 나는 아내의 지나온 젊음청춘아픔임과 동시에 멋진 추억으로 여기고자 한다. 이 지금 이 나이에 

나는 아내의 싱싱한 영혼에 고마운 따름이다.

아내의 첫사랑 흔적을 나는 가끔씩 기웃거린다. 아내가 만약 시집을 발행 했더라면 그분에게 보내는 시로 주요 시상을 잡았을 것이다. 물론 황홀하고 아름다운 진주 같은 시상이었을 같다. 첫사랑이란 우리가 어제든지 찾아가고 싶은 고향집처럼, 마음 속 윤슬로 어느 누구도 간직하며 살고 있을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이것은 사랑이 민주화이고 선진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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