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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집 Oct 31. 2018

바람이  부르는 노래

바람이 부르는 노래

얼마 전 타르카드 점을 보았다. 점괘를 읽은 사람은 물, 불, 흙, 바람 네 가지 기질 중에 물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많다. 물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에 스며들어 그 사람의 삶을 읽어 내기 때문이다. 불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스며들기에는 그 기운이 너무 뜨겁기 때문일까, 차분하고 적당한 거리까지만 관여하는 흙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남의 생애를 읽어 내기에는 너무 관조 적인 것일까, 부채꼴 모양으로 활짝 펼쳐진 78개의 카드 중 에 일곱 장을 고르면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으로 미래의 운명을 풀어준다. 

뽑은 몇 장의 타르카드로 내 삶을 읽어 낸다는 것에 호기심과 의혹이 들었다. 그림을 분석하던 여자의 입술사이로 흘러나온 이약들은 맞을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보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었다. 조금 시니컬하고 호기심 어린 나의 태도에 여자는 이외의 반응을 보였다. “이 일을 하면 참 잘 할 것 같네요,” 여자는 긴 망토와 책을 들고 반짝이는 왕관을 쓴 신화속의 여황제가 그려진 카드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카드를 읽어주는 타로 리더들은 영적인 능력이나 신 내림이 없다. 다만 그 그림을 분석 할 뿐이다. 나의 예민함이 여자에게도 느껴졌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과 함께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여자의 섬세한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그 눈빛을 닮은 친구가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은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기질을 가진 친구는 일 년 내내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다. 화단에서 제법 인정받는 재능이 그렇게 묻혀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내게 아프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이해시키고 싶어 했다. 아프지만 않으면 할 수 있을 텐데, 얼마 전 처음으로 시작한 일도 아프다는 이유로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그만두었다.

건강해지면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자신의 내밀 한 세상 속으로 숨어버렸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분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풍부한 감성을 지닌 친구에게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결혼 초부터 세 아이를 둔 지금까지 아프다, 물의 기질은 닮은 친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친구의 친정어머니가 물처럼 낮선  사람들 삶에 스며들어 그들의 생을 예언하는 유명한 점술 인이라는 것을 고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늘 아파하면서도 친정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그녀의 생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희망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 불어오는 바람을 물과 불 그리고 흙이 바람막이가 되어 줄 수는 없다. 다만 짐작 할 수 없는 우리의 생을 점괘에 의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론 누군가의 위안이 필요 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은 친구와 나 또한 다를 것이 없다. 그런 데 왜 나는 친구의 아픔에 대해 모른 척하고만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삶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 무의식 속의 강박관념 때문일까, 아니면 나 또한 상처를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일까, 타로 카드를 펼쳐 놓은 좁은 공간에 차례를 기다리는 지친얼굴의 사람들이 하나 둘 의자에 와 앉는다. 불안과 상처가 커질수록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운명을 궁금해 하는 이들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 모습 속에 나도 있고 친구도 있다. 

나는 타르 카드의 그림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하지만 그 또한 어디에도 위로 받을 공간이 없어 보였다. 작가 은희경의 빛이 잘 들지 않은 어둑한 공간인 서향 길을 찾아 이사하는 것처럼 친구와 나 또한 자신을 지켜줄 내밀만한 공간을 꿈꾸는지 모른다. 그래서 친구는 자신이 소망하는 삶을 향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진 78장의 타르카드 속에는 꽁꽁 숨은 미래의 운명과 마주하는 동안 나는 또 하나의 깊은 강을 건너온 느낌이었다. 

운명을 점치는 타로카드 가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내 무의식 속의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드 뒷면은 쓸쓸한 우리들의 또 다른 삶의 뒷모습이 닮아 있다. 카드 앞면을 보기 전가지 확신 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삶이 바로 내가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오늘이면 내일이다. 

나는 서둘러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지하 계단을 빠져 나왔다. 초록으로 빛나는 은 사시나무 사이로 하늬바람이 불어왔다. 휴대폰에서 친구의 이름을 불러내자, 액정위로 환하게 떠올랐다.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이 그 이름위에 반짝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통화음 저 너머로 아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람이 부르는 노래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삶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불안을 떨쳐버리고 무심한 상태로 닫힌 마음을 열러 주려는 따뜻한 바람이 부르는 초록의 노래인지도 ……. 세상의 편견이란 깊고 검은 바다에 순장된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휘휘 또다시 불어오는 바람들의 행렬 인지도 모른다. 내 동네 너머로 꾸물거린 던  오후의 햇살이 엷어지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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