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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바람이 불면 Apr 27. 2022

제2화 다슬기와 축구공

익숙함에 대한 존경

  2022년 봄이 지나가고 있으니, 1997년 봄부터 이어져 온 나의 한우물 파기가 벌써 25년째다. 영상제작하는 피디로서 인연이 닿은 크고 작은 프로그램만 50여 개, 그중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SBS 생활의 달인이다. 2005년 1회부터 2009년 202회까지 5년의 시간을 갖다 바친(?) 애증의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만난 한 분의 달인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생활의 달인은 프로그램 특성상 많은 제보, 그리고 달인의 실력을 검증해야 하는 사전답사 작업이 필수다. 2005년의 한 여름, 그날도 피디(나)와 작가는 하이에나처럼 충청북도 청주에서 달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몇 군데 열한 답사를 실패(아이템 펑크) 한 후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청주 외곽에 위치한 미원이란 마을의 다슬기 해장국집이었다. 다슬기! 충청도식 표현으로 올갱이며 경상도에선 고디, 전라도에선 대사리로 불리며 깨끗한 냇가에 서식한다. 당에 들어서자마자 후각으로 느껴지는 해장국 향과 시각으로 다가오는 다슬기를 까고 있는 여러 손의 분주함이 였다. 그중 독보적인 속도감을 지닌 한 분이 달인 후보!

주인아주머니의 빠른 손놀림에 다슬기는 금방 속살을 드러낸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오른손에  바늘을 다슬기에 꼽은 채 왼손 회전을 하면서 속살을  뽑아낸다. 남은 건 바늘에 찔린 채 영롱한 초록의 자태를 뽐내는 다슬기! 이쯤에서 피디는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슬기를 왜 이렇게 잘 까세요?"                                              답변을 듣기 전까지는 조금 빠른 손놀림의 사장님이었다. 달인으로 방송에 소개하기에는 2% 부족한 느낌의 평범함!               하지만 돌아온 답변에 상황이 달라졌다.                                                                       " 축구선수가 달리 축구선수요? 매일 공만 차니 축구선수지" 아... 당연한 말인데 왜 이렇게 뒤통수를 세게 맞은 거 같은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무심히 들려온 답변에 무조건 촬영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달인이란 타이틀이 이 분께 잘 어울린다고 느낀 것은 사전 답사 후 일주일이 지난 본격적인 촬영 때다. 달인은  시어머니와 일일드라마를 시청하며 눈을 감고도 다슬기를 깠으며, 해장국 한 그릇에 들어가는 다슬기 개수가  그까짓 거 대충 두 번 잡으면 100개, 축구선수가 골문을 향해 공을 차듯이  다슬기를 빈 그릇에 골인시키는 신공 등은 가히 달인의 경지라 칭할만했다.

익숙함은 참 신기하고 대단한 일들을 변화시킨다. 어릴 때 냇가에서 재미로 잡던 익숙함으로 다슬기 해장국집을 열었고,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출연해 달인이란 호칭을 얻게 되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부터 올 해까지 35년 동안 다슬기를 잡고, 잡은 다슬기는 빠르게 깠다. 20평이던 가게는 60평으로 확장되었고, 달인의 아들은 대를 이어 해장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슬기가 시력 회복에 좋고 간 기능 회복에 좋다(믿거나 말거나)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오늘도 달인의 해장국을 찾고 있다.


요즘도 가끔은 17년 , 그때의 축구공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 어떤 철학자의 이론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달인의 명언 통해 <익숙함에 대한 존경>이란 나의 결론이 생겼다. 5월 중순부터 11월까지 다슬기를 잡는다고 했다. 얼마 전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달인은 요즘도 비가 오는 날만 아니라면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는단다. 어릴 때부터 해오던 대로 하신다고 하니 그 익숙함을 존경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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