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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08. 2021

어쩌다 수영

수영 입문

영화 <언더 워터>에서는 주인공 낸시가 해변에서 200m 떨어진 곳에 표류되어 상어를 맞닥뜨린다. 일반인인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 이긴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될까? 2020 도쿄 올림픽 자유형 200m에 출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황선우 선수의 기록은 1분 45초 26이고 상어의 초속은 11.7미터이다. 황선우 선수가 200m 앞에 있는 상어와 눈이 마주쳐 ‘망했네’라고 생각하고 나면 상어가 17.7초 만에 코앞에 와있다는 뜻이다.


수영이 바다에서 상어를 만난 사람을 살리진 못하지만, 삶에 지쳐 있는 사람은 살릴 수 있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직장인이 되면 근사한 삶을 살 줄 알았다. 물론 얼마 안 되어 직장인의 삶이란 아침엔 카페인으로 정신을 차리고, 저녁엔 알코올로 침대 위에 뻗는 것임을 깨달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놀 땐 그나마 괜찮은데 이마저도 없이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무력하게 하루를 끝내곤 했다.

계속되는 무력감에 숨 막혀 죽겠다는 생각이 극에 달할 즈음 우연히 집 앞에 있는 수영장을 마주했다.


어릴 때 저수지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굳이 수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력감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집 앞에 있는 수영장 물에라도 빠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습을 등록했다.


수영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다. 파랗고 시원한 물, 알싸한 락스 냄새, 수영장 안에 울리는 활기찬 소리, 물속을 타고 흐르는 기분.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시원한 물속에서 잘하는 사람들을 구경도 하고, 따라다니기도 하며 한 달, 두 달 강습을 연장하다 보니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시작할 때는 출근하기 싫어서 잠들기 무서웠던 20대였는데 지금은 수영하고 싶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30대가 되었다.


덕분에 20대 때보다 지금의 신체 건강이 더 좋아졌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 구남친(현남편)과 연애초 5km 마라톤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걸어서 완주하는 것도 힘들어 얼굴에 미역 같은 머리카락을 붙인 채 들숨날숨을 다 내뿜었, 이제는 하루에 5km 수영을 하고, 건강검진에서는 마라토너의 심장(*의학 용어로는 ‘동서맥’) 이라는 판정을 받을 만큼 지구력도 좋아지고, 심폐기능도 개선되었


삶이 답답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다 시작한 수영은 나의 가장 행복한 일상이 되었다. 무력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아무것이나 좋으니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만약 나처럼 수영을 찾는다당신도 행복하고 건강한 락스 물 중독자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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