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드문 집에서
1. 첫 전세 계약
취업준비생 자격으로 LH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투룸 전세 계약에 성공했다. 두 번째 나의 집은 어떻게 채울까 참 많이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투룸 집의 크기는 작았다. 두 방 중 큰 방은 내가 주로 잠을 자는 곳, 작은 방은 옷과 책을 보관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조금 더 계획을 구체화기로 했다.
2. 셀프 페인팅
이사하기 전 당시 한창 핫했던 키워드인 '셀프인테리어' 바람에 나도 솔깃하여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해 온갖 후기를 찾아보고, 노루 친환경 백색 페인트를 구매해 벽을 하얗게 칠하기로 했다. 물론 집주인 아주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의외로 적극 장려하셨다. 사실 집이 굉장히 깔끔하긴 했지만 하얗게 페인트를 칠하면 더 밝고 깨끗해 보일거라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생전 처음해보는 페인트칠이 직접 하려니 쉽지 않아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좁은 집이지만 혼자 하려니 막막했는데 여기저기서 없는 시간 쪼개 찾아준 대학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새 침대를 사기에는 가격이 다소 부담되어 망설이던 시기에 지인분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싱글 침대 2개와 소파베드를 굉장히 저렴한 값에 내놓으신 글을 보고 바로 메시지를 드렸다. 사실 혼자 사는 집이라 침대는 1개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세트로 사야지만 판매를 하신다고 하여 방 양쪽에 싱글 침대를 1개씩 두기로 했다. 혹여나 우리 집에 누군가 방문할 가족, 친구 또는 손님을 위해.
어쩌면 이때부터 왠지 올지 모를 '손님'을 대비하여 '손님방'을 준비했었던 것 같다.
3. 빨래
2년 계약한 집이라 이 집에서 사계절을 두 번 보내야 했다. 다행히 지층집이라 그런지 입주했던 10월 찾아온 가을, 겨울 바람이 세게 불지도 않고 겨울에 난방도 잘되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봄, 여름이었다. 이전 원룸 집과는 다르게 양옆, 앞으로 건물이 막고 있어 생각보다 집에 빛이 너무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만 해가 큰방으로 들어왔다가 금새 사라져 버리는 구조였다. 빨래를 하고 빛이 적은 방 안에 널어야 하는게 무척 슬프고 고달팠다. 그때 스쳤던 생각이 '햇볕에 바짝 빨래를 말리고 싶다' 였으니 오죽했을까. 가능하면 주말에 빨래를 돌린 뒤 건조대를 집 앞에 내두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어 큰 방에 창문을 활짝 열고 빨래를 널으려 했으나 지층집이라 밖이 또 훤하게 보였다. 외국인들도 많이 지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볼 걱정에 항상 커튼을 쳐두고 있어야 하는 이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계약 당시 지층집이 1층이라는 생각만 했었지만, 채광 없는 부분은 반지하 구조의 집과도 같았다. 생각보다 불편한 구조를 가진 집이었다.
그런 이 집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4. 침수
2019년 5월, <기생충> 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누구는 보는 내내 불편했다고 하고, 누구는 이 시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단한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이 영화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잘 보여준 영화라고 감히 평가를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배우 송강호 주인공네 가족들이 열심히 잠긴 반지층 집의 물을 퍼나르던 장면이다. 사실 위 소제목이 '침수'라 그정도로 '침수'가 된거야?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비가 온 날 배수구가 막혀 거실 바닥 전체가 잠겨 물을 퍼날랐고, 물을 말리기 위해 장판을 다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나는 집에서 머물지 못하고 찜질방을 전전긍긍했다. 물론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빠르게 작업 후 복구에 힘써주셨고 임시로 머무는 곳의 숙박비도 챙겨주셨다.
아 정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해 여름이다.
5. 엄마와 아빠
큰 방에는 2명이 잘 수 있어 가끔 친구들이 놀러와서 자고 갔다. 사실 친구보다 가족이 많이 왔었다. 엄마와 아빠, 엄마와 누나가 서울에 볼 일 있을때 와서 반찬 한가득 챙겨오셔서 묵고 가실때 집에 온기가 꽤나 오래갔다. 기억남는 장면 중 하나는 친척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들린 엄마와 아빠랑 모처럼 늦게까지 저녁을 먹고 들어와 자정까지 긴 얘기를 나눴던 밤의 대화이다.
갑자기 아빠가 내 방에 있던 통기타를 번쩍 들더니 옛날 실력은 아니지만 아직도 기억해낼 수 있는 곡이 있다며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한 곡은 바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엄마가 아빠의 저음에 화음을 보탰다. (엄마는 교회 성가대 출신 집사님, 아니 지금은 권사님이다.) 아직도 그 날의 영상을 두고두고 보는 이유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아빠의 멋진 하모니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양희은이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의 LP 음반들을 차곡차곡 수집할 정도로.
나에게 두 분은 늘 '호스트(주인)'였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나의 '게스트(손님)'가 되어 있었다. 서울살이가 나에게 준 크나큰 경험이 아닐까 싶다. 왔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손님으로서 부모님을 맞이할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6. 계약 만료
어느덧 다시 가을, 10월이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음을 느낄 때, 방을 빼야 되는 시점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다시 어떻게 집을 구해야 되나 사실 걱정만 앞섰다. 회사를 다니며 평일 저녁, 주말 시간 내어 홀로 집을 구한다는 게 여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있을까. 특별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업무 특성상 지점 이동이 비정기적으로 있어 그당시 근무지가 선릉 주변이라 근처 집을 알아봤는데 내 예산으로는 죄다 원룸 반지하, 옥탑뿐이다. 다시 겸손하게 이태원 동네 주변을 나서보기로 한다.
우연한 계기로 미용실 약품 냄새를 풍기던 내 첫 원룸 집 근처 부동산을 들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 책에서 주로 써내려갈 #찬빈네집 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독립출판에 관심을 갖게 되며 좋아하게 된 태재 작가님의 <서울>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계약 만료 시점에 우연히 접했던 이 시는 내 마음 속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어쩌면 꽤 긴 시간동안 내 서울살이와 어울릴 것 같아 이글을 끝으로 나누고자 한다.
집 많은데
내 집 없고
울 일 많은데
울 곳 없어가
다들 전봇대에
기대 서 있네
서서 울어서
서울인갑다
-태재 <서울>, 『우리 집에서 자요』
진짜 서서 울고 싶은 나날이 많았던 것 같다. #찬빈네집 을 만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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