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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bin Park Jul 21. 2021

정원 있는 집을 꿈꾸다

촌(村)스러운 집의 낭만

1. 마당 목공 작업


집 크기의 1/3이 마당으로 구성된 집. 어쩌면 나는 이 집을 처음 마주하고, 바로 이 마당 덕분에? 혼자만의 재미난 작당을 꾸미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이곳에 친구들을 불러서 편하게 놀고, 먹을 수 있는 작은 가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사실 가구 제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앉아 쉬었다 갈 수 있는 어떤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 해 여름 목수가 되기 위해 호주로 떠나려는 훈호형에게 연락했다. 대학생 시절 훈호형은 내 가장 친한 형이자 친구이며 기숙사에서 나와 집을 구하던 중 묵을 곳이 없어 남는 방 한 칸에 나를 수개월간 보살펴준 은인 같은 존재이다. (이렇게 쓰니 조금 낯간지럽지만, 그 당시 나는 훈호형에게 큰 빚과 사랑을 받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방부목이라는 존재를 훈호형 덕분에 알게 되었다. 상업용 외부 목재로 많이 쓰이고, 무엇보다 눈/비에 끄떡없는 튼튼한 목재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고 집 앞까지 친절하게 배송을 해주었다. 다만 우리 집은 긴 나무를 옮길 수 있는 높이/폭이 안되어 부득이하게 옆집 옥상으로 넘어가 대문을 통해 방부목 재료를 혼자 다 날랐다. 어찌 보면 범죄일 수 있는 '남의 집 담넘기'를 불가피하게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방법 외에는 나무를 온전히 집 꼭대기층의 마당으로 나를 수 없어 지금 생각해봐도 무모하고 다이내믹했다. 아무도 마주 치는 사람이 없어 다행히 민망함은 덜했다.


형이 고향집에서 가져온 전기톱과 목공 도구들로 방부목들을 재단하고 못질했다. 만들려고 했던 구조물의 형태는 간단했으나, 생각보다 재료 길이와 무게가 되다 보니 균형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다. 삼각형 모양의 디자인이었는데 마당 구조가 삼각형 모양이라, 마치 구조물이 마당의 축소판 같았다. 천장 햇빛을 가릴 '린넨'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계획했던 디자인은 아니었으나 대충 린넨을 올려서 균형을 맞춰보니 방부목과 잘 어울렸다. 이 린넨은 설치한 그해 여름 역사상 가장 강한 태풍 때문에 찢길대로 찢기다가 결국 그냥 두면 지붕도 린넨과 함께 같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 내가 잘라내고야 말았다. 


삼각지붕 마당 목공 작업을 끝내고

 

그렇게 우여곡절을 경험했던 삼각지붕의 구조물이 우리집 정원 가꾸기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야외 테이블로 사용할 목재를 찾다가 근처 공사 현장에서 폐기한 나무 파렛트를 주워 안 쓰는 가구 다리를 잘라 붙여 테이블로 만들었다. 역시나 파렛트는 튼튼했고, 무엇을 올려두어도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잘 전달해주었다.


한강을 보며 내리는 나를 위한 브루잉 커피



삼각 모서리에 자투리 합판을 붙여 나만의 커피 바도 완성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에만 이곳에서 커피를 내린다. 


2. 캠프파이어



남은 목재들로 훈호형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벤치를 만들어주었다. 이 형은 그냥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금세 뚝딱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물론 많은 부탁과 거절의 과정은 오고 갔다.) 형 덕분에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린넨 지붕까지 완성되었다.


겨울밤과 어울리는 캠핑 장비까지 합세하면서 집 마당이지만 마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캠핑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이때 형 덕분에 '고체연료'라는 신박한 아이템을 알게 되었다. 이제껏 불 피울 수 있는 땔감에 힘겹게 불을 피워내야만 할 줄 알았는데 고체연료 한방에 불이 쉽게, 그것도 매우 잘 타면서 예쁜 캠프파이어 느낌의 불 모양을 만들어냈다. 


불피우는 남자


이상하게 활활 타오르는 불만 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물론 불이 주는 따스함이 좋았지만, 그간 움켜쥐고 있었던 불안감들도 같이 타버리는 느낌이 들어 더 좋았다. 형은 계속 불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준비했던 땔감들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집에서 불 피우는 재미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불 피운 밤에도 역시 또 커피를 내렸다. 어떤 커피를 마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밤에 마셨던 커피 치고는 꽤 가볍게 느껴졌다. 뭔가 해낸 날에 마신 커피여서 그런지 술술 넘어갔던 거겠지?



3. 세 그루의 나무를 심다


2019년 봄, 마당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예전부터 옥상정원을 갖고 싶었다. 왠지 옥상에서는 더 햇빛도 잘 받고, 식물들이 무럭무럭 잘 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훈호형과 함께 양재 꽃시장 옆 화훼공판장을 찾았다. 종류를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그중 가격과 관리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앵두나무, 사과나무 그리고 복숭아나무를 골랐다. 뿌리를 잘 감싸서 차로 옮겼으나 길이가 길어서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어 나무의 숨구멍을 열어줬다. 달리는 내내 혹여나 꺾이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이태원까지 잘 운전해서 데려왔다.


나무 태운 사나이


지난 마당 가구 작업 시 사용했던 방부목은 꽤나 두꺼워 얇은 녀석으로 골랐는데 대형화분으로 제작하기에 딱 적당했다. 나무 팔레트도 동네 주변에서 몇 개 괜찮은 아이로 주워와 받침으로 만들었다. 사실 팔레트만큼 튼튼한 옥상 가구 재료도 없을 것 같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구매했던 흙을 잘 메워줬다. 


만능재주꾼 훈호형의 도움으로 탄생한 #찬빈네집 정원


역시나 이번에도 훈호형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대형 화분 = 정원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흙을 사서 정원을 만드는 게 좀 내키진 않았지만, 좋은 흙을 써야 나무가 잘 자리를 잡을 거라 믿으며 충분히 뿌리를 다 덮어지도록 뿌려주었다. 


볼때마다 흐뭇한 싱그러운 꽃잎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녀석들이 참 재미있다. 사실 마당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위치라 말라죽지는 않을까 했지만 봄과 여름 이 녀석들은 푸른 꽃잎과 열매를 맺었다. 앵두 열매를 몇 번 따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맛은 좋지 않았다. 몇 번 먹어 보다가 그저 열매는 멀리서 바라만 보기로 했다. 


열매를 맺다


벚꽃이 활짝 핀 봄 2020


사계절을 보내고 난 뒤의 2020년 봄. 겨울 내내 세 그루의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겼다. 사실 사계절을 처음 겪어본 터라 내심 나무가 죽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봄이 되는 신호를 알리기라도 한 듯 작은 잎사귀들이 피어났고, 마침내 2020년 3월 복숭아나무에서 싱그러운 벚꽃을 피어냈다. 


처음이었다. 


이제껏 어렸을 적 키우던 화분도 무심한 탓에 꽃을 피우는지, 열매를 맺는지 관심 없었는데 이 나무의 사계절을 함께 경험한 느낌이 들었다. 꽃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길냥이가 정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낮잠 용 침대 마냥 드러누워 매일 낮 일광욕을 즐겼다. 나무와 고양이, 두 존재가 우리 집의 온도를 더 높여줬고 내 마음 한켠을 따스하게 채워주었다. 


4. 길냥이 보리의 집


이삿날부터 우리 집 마당에 자주 출몰했던 길냥이. 나는 이 친구를 보리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사실 보리라고 이름을 지어준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집과 사료/물통을 후원해준 제리 형 덕분이다. 나의 전 직장 동료이자, 현 직장 동료인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준 형. 형이 키우는 아이의 이름은 수리이다. 수리는 새끼 길냥이일 때 형이 입양을 했는데 다리가 아파 어렸을 때부터 큰 수술을 했었다. 


지금도 다친 다리로 인해 잘 걷지 못하지만, 형을 만나 잘 지내고 있는 수리를 보면 참 대견했다.


직접 만든 집과 수리가 먹던 간식들을 선물해준 제리


뚝딱뚝딱 길냥이 집을 설치하고 사료와 물통도 가득 채워주었다. 수리 아버지 제리의 보리 사랑. 보리의 '보'는 출신지 보광동을 의미하고, '리'는 수리/제리에게 감사함을 전하고자 붙여주었다. 


사실 그냥 나의 애칭 정도이지만.


일광욕 중인 보리


정원과 집을 오가며 배회하는 보리를 보면 '그래도 애써서 만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아이가 이 공간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게 곧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5. 옥상 영화제


사실 마당과 옥상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 집의 구조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마당'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보통 마당은 '1층 출입문부터 시작된 어느 영역, 터'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옥상을 겸해있으니 옥상 정원, 옥탑 집 등으로 섞어 설명할 때가 많다.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기에 상대방이 이해하기 편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마당에 앉아 쉴 곳도 있고, 꽃도 있고, 길냥이도 있고, 캠프파이어도 있고. 무엇을 더 해볼까 하다가 바로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다. 빔프로젝터가 필요했는데 때마침 직장에서 알게 된 고객사분이 안 쓰는 빔프로젝터가 있다면서 선물해주셨다. 삼성 제품이었는데 화질도 좋고, 선명도도 끝내 줬다.


운 좋게 마주하고 있는 건물의 벽이 창문도 


빔프로젝터를 연결 중인 집주인과 손님


옥상 정원에서 가장 필요한 건 멀티탭이다. 긴 전선이 있어야 전자 제품과의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멀티탭을 준비하여 벽면에 띄울 빔프로젝터와 랩탑을 연결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영화가 깜깜해진 밤에 마무리가 되었다.


어두운 밤, 그린북을 함께 봤다.


세훈 님과 상우님을 초대하여 영화 <그린북>을 시청했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되었고, 영화에 빠져 들게 되었다. 상우님이 마당 개시 선물로 사주신 일광 전구 조명이 빛을 발했다. 조명이 없었다면 이런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린북 장면들 하나하나가 더 선명하게 오래 남았다. 


사실 극장에서 이미 한 번 관람했던 영화라 큰 기대를 안 했으나, 옥상에서 날 것 그대로 바라보는 영화라 그런지 더 흥미롭게 다가온 것 같다. 다음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텐트도 치고 고기도 구워 먹으면서 다양한 영상들을 즐겨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정원을 완성하다


최근 유현준 교수님이 쓰신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주거환경에 따른 삶의 방식의 차이'이다. 코로나 이후의 주거 형태가 변화되는 부분도 이 책에서 다루었는데, 그중 '테라스가 있는 집'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누군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베란다(테라스)를 거실 공간으로 포함시켜 확장하는 게 오늘날 대세였다. 하지만 외부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자가격리, 재택근무) 인간은 실내에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밖(외부)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부 공간에서 외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곳이 꼭 필요해질 거라고 했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다르게 외부 공간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라 보편적이고 적절한 집의 구조는 물론 아니지만, 나는 집에서 외부 자연을 느끼고, 느린 시간을 경험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 


정원 있는 집을 꿈꿨는데, 그 꿈을 이 집 덕분에 '촌(村)스러운 집의 낭만'를 이룬 것 같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씨가 정원에 앉아 봄날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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