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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bin Park Jul 21. 2021

SMCC

일요일 아침,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는 모임

1. 커피가 좋아서


친구들은 나를 '커피 매니아'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커피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성이 없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이렇게 맨날 커피를 많이 마시는데 커피에 대해 이 정도밖에 모른다고?'라며 홀로 자책하면서, 그냥 '맛있으니까 마시지'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커피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10년 전에 마신 첫 에스프레소 한 잔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때 내가 느꼈던 에스프레소 첫 모금의 인상은 '이 쓰디쓴 걸 도대체 돈 주고 왜 마시는 거지?'였다. 사실 그 당시 에스프레소 메뉴를 고른 이유는 일단 잠시 근처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때워야 하기도 했었고, 수많은 메뉴 중 가장 첫 란에 값이 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별 의심 없이 가볍게 털어 넣었던 내 자신감 넘치던 첫 에스프레소는 정말 뱉고 싶을 정도로 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에스프레소를 머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용히 빈 잔에 뱉었던 게 분명하다. 이후 나는 '커피가 안 맞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생의 패기로 학교 수업을 듣다 무수히 많은 조별 과제, 팀 프로젝트, 그리고 여러 약속 들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아메리카노 마니아가 되어 있었다. 에스프레소보다는 확실히 덜 쓴데, 가격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점 라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나는 아메리카노, 라떼를 기분과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기 시작했다.


워낙 새로운 공간을 가보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대학생 때부터 서울 곳곳에 책방, 카페, 복합 문화공간 등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간을 많이 찾아다니다 보니 나만의 좋은 공간들의 리스트가 머릿속에 나열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신촌에 간다면 여기는 꼭 가봐야 되는 곳, 경복궁에 간다면 여기는 꼭 들러봐야 하는 곳 같이 내 기준의 'Must Visit'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블로그에 차츰차츰 공간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특색이 다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생겨나는 곳마다 콘셉트, 구조, 심지어 디자인까지 비슷해졌다. 비슷한 방식대로 생겨나는 새로운 공간을 방문하는 것에 차츰차츰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공간'이 아닌, 공간을 이루는 '사람'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공간/하드웨어 위주로 공간의 좋고, 싫음을 판단했었다면 이 카페를 방문하고 나서는 공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정말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바로 그곳은 한남동에 위치한 아러바우트(@r.aboutcoffee) 카페이다. 오래된 주택을 현대식으로 리노베이션 한 인테리어에 누군가는 '허름하다'라 표현하지만, 나는 오히려 '세련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아러바우트 한남점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둘러보다 나가는 게 보통 카페 방문기라면 아러바우트는 조금 달랐다. 그 당시 바리스타 Kris는 나에게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부터 내가 주문한 커피 외 다른 커피들도 조금씩 내어주면서 맛을 보게 했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물었다. 사실 일방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소통'을 했던 것이다. 바리스타와 이렇게 소소하게 대화를 하며 소통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바리스타라는 사람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바리스타가 추천한 커피는 꼭 한 번 마시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어쩌면 2017년 Kris를 만난 게 내 커피 여정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유쾌한 바리스타와의 대화, 맛있는 커피 앞에서 흔쾌히 지갑의 문을 여는 내 습관을 만들어준 Kris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 나만의 홈카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 있는 커피 도구들로 내려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자주 가던 카페를 덜 찾게 되었다. 책 읽는 것보다 책 사는 게 취미인 나는, 커피도 역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커피 도구를 사는 게 취미가 되어 버렸다. 전 직장 지사장님이 선물해주신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이 나만의 홈카페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실제 한 번 사용해보고 고이 모셔두었다. 여전히 에스프레소 추출은 장벽이 높다. 좋은 기회에 배워서 잘 사용해보고 싶다. 


홈카페의 시작은 보통 핸드밀 그라인더로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칼리타 핸드밀로 홈 브루잉을 시작했다. 그러다 회사에 비치된 Wilfa 전동 그라인더를 써보고 '아 이건 완전 신세계구나'를 느낀 뒤 핸드밀 그라인더는 부엌 서랍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었다. 자주 사용하는 추출 도구는 하리오 V60이다. 아무래도 혼자 빠르게 추출해서 가볍게 마시는 걸 즐기다 보니 이 도구만큼 나에게 적합한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에어로프레스와 케멕스도 구입을 했다. 에어로프레스는 가볍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케멕스는 아무래도 집에 손님을 많이 초대하다 보니 많은 양을 추출할 때 좋은 추출 도구이다. 레버 프레소라는 휴대용 '에스프레소' 추출 도구도 있는데 이것도 처음에 좀 쓰다가 사용 빈도수가 줄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전동 그라인더 하나로 에스프레소 추출용 빈을 그라인딩을 하기에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엄청 핑계만 많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취미가 되면서 친구들에게 추출 도구, 원두를 추천할 때가 많다.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려면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는 원두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값비싼 추출 도구로 시작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추출 도구로 연습해보는 게 필요하다. 가장 추천하는 도구는 바로 저울(Scale)이다. 정량대로 추출해보면서 내 취향을 맞춰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전동 그라인더는 10만 원대로 구매해서 굵게도 갈아보고, 얇게도 갈아보고 하면서 쓴 맛을 더 가져가고 싶은지, 산미를 더 가져가고 싶은지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모든 게 좀 귀찮고 어렵다면, 드립백을 사서 뜨거운 물을 정량 껏 부어 마셔보는 것도 좋다. 요즘은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숍에서 훌륭한 드립백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산 서면에 위치한 베르크(@werk.roasters) 드립백, 최고다.


3. 내 친구, 바리스타


여러 카페를 다니면서 바리스타분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친구가 되었다. 친구의 정의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카페라는 공간 외에서도 친근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내가 내리는 정의가 아닐까 싶다. 


1) Ray @bbingtiger



레이는 나랑 동갑이다. 2017년 에어비앤비에서 근무할 때 레이가 일하고 있던 mtl 한남점에서 게스트 밋업을 진행했다. 그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인데 보광동 이웃이라 더 가까워졌다. 레이는 호주 멜버른에서 커피를 시작해서 mtl 한남점에서 보난자 커피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최근에는 젠틀몬스터에서 커피 디렉팅을 했고, 요즘은 유명한 유튜버 '삥타이거'가 되었다. 


처음 레이를 봤을 때 모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훤칠한 키, 개성 있는 모습에 참 멋있는 분이구나 싶었다. 몇 마디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위트, 깊은 대화로 넘어가는 질문들을 잘 짚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레이가 내려준 커피는 4B 로스터가 로스팅한 원두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산미를 가진 커피였다.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 친절이 느껴졌다. 이 친구는 어느 공간에 가도 자기만의 개성과 색깔을 자연스레 녹일 줄 아는 멋이 있다. 칭찬이 다소 과했으니, 이만 마무리하기로 하고 유튜브에 '삥타이거'를 검색해서 다양한 커피 세계를 경험해보시길! (구독과 좋아요는 필수래요)


2) Momento brewers @momento_brewers_



성수동이 뜬다고 했다. 조금 지나니 뚝섬이 뜬다고 했다. 조금 더 지나니 서울숲이 뜬다고 했다. 뜨는 동네들이 많아지는 요즘, 서울숲과 뚝섬 사이 인적이 드문 곳에 2019년 초겨울 '모멘토 브루어스'가 오픈했다. 호주 멜버른에서 7일간 하루에 커피를 세 잔씩 들이키며 멜버른의 커피씬을 즐긴 적이 있다. 그중 여러 방면에서 경험이 좋았던 브랜드는 바로 '마켓 레인(Market Lane)'이다. 


이 마켓 레인 커피를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원두를 국내에 납품하는 곳이 바로 '모멘토 브루어스'이다. 공동대표 Caleb(캘럽)은 마켓 레인에서 약 4년간 바리스타로 활동했다. 그 경험을 통해 한국에 멜버른 커피 문화와 좋은 커피를 알리고자 하는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켓 레인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 커피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 무엇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공간 경험을 신경 쓰는 섬세함까지 모멘토 브루어스는 이 모든 삼박자가 잘 맞아있다. 공동대표 성원, 그리고 아람, 준엽, 석현을 초대했다. 초대를 한건 나였지만, 내가 마치 초대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공간만 제공했고, 모든 시작과 끝을 이들이 만들어주었다. 좋은 동료를 얻은 기분이다. (저 설거지 잘합니다..)


3) Jun @acoffee_seoul



마켓 레인 커피와 함께 멜버른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을 선사해준 브랜드, 에이 커피(A COFFEE). 콜링우드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개성 있는 숍들과 밝고 경쾌한 거리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에이 커피에서 일하고 있는 Jun 덕분에 멜버른 여행이 조금은 수월했다. 멜버른에 가기 전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저 한편에서 로스팅을 하고 있는 진지한 그의 태도를 보며 '나도 무언가에 진지하게 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될 정도로' 부러움이 느껴졌었다. 



Jun이 서울에 왔다. 그리고 에이 커피 서울을 준비하고 있다. 내 여자 친구인 은혜와 어렸을 적 친구인 Jun은 은혜와 나에게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경험했던 멜버른의 시간들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 주었다. 수많은 고민과 배움이 풀어내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그런 스토리들이 커피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누군가에는 그냥 가벼운 한 잔이겠지만, 산지에서 수확된 생두 그리고 멜버른에서 로스팅된 원두 그리고 서울에서 내린 한 잔의 커피. 감히 가볍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새로운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4. 옥상 커핑 with Dan @seitopau


어쩌다 보니 멜버른 출신의 바리스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그들이 전해준 커피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여전히 왜 이렇게 인연이 되었는지 돌아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던 Dan 형이 멜버른 여행 후 몇몇 스페셜티 커피숍에서 커핑(Cupping)을 진행하는 것을 접했다. 커핑이란 무엇인지 구글에 검색해보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커피 커핑: '커피의 본질적인 맛 테스트로 커피를 감별하거나 맛에 대한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색상, 맛, 향, 질감, 뒷맛 등의 얻어진 자료를 토대로 커피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평가를 내린다.'


기회가 되면 우리 집 마당에서 해보고 싶다는 내 제안에 형은 선뜻 수락을 했고, 형과 나의 소셜 계정에 같이 커핑을 할 인원을 모집했다. 정원 5명이 빠르게 마감되어 운 좋게 진행할 수 있었다. 



<@emily_850909 님의 후기>

신개념 루프탑 커핑. 주말 이른 아침, @dripcopyrider 님의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즐긴 루프탑 커핑은 정말 황홀했다. 나만의 아지트를 오픈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서 더 감사드리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규모와 상관없이 이러한 형태의 공유 공간..매력이 넘치는구나...음 비밀기지 같은 느낌도 있고!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신 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배울 점이 가득했던 하루!



<@hyo.nu 님의 후기>

찬빈 @dripcopyrider 님의 인스타를 통해 연락드려 처음으로 뵙게 된 날. 사방이 탁 트인 집 마당에서 모닝커피이라니! 마음까지 정화된다. #찬빈네집 #햇살맛집 #초대감사해요. 지난번 라곰에서 즐겼던 호주 커피 중에 6가지를 골라 다시 그 감동을 즐길 수 있었는데, Dan 님의 설명이 곁들여진 색다른 커피를 즐긴 아침이었다. 커피를 잘 알고 모르고 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눔 하고, 공간을 공유하여 소비하는 행위가 인상 깊었고, 언젠간 나도 좋은 분들을 초대해서 좋은 커피를 나눔 하는 것을 꿈꾸게 되었던 순간이다.


5. SMCC @smccseoul


SMCC는 Sunday Morning Coffee Cluv의 약자이다.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히 커피 원두 사는 게 취미인 친구 둘과 함께 원두를 소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여행 다녀온 뒤 쌓인 원두를 혼자 마시긴 어렵고, 같이 나눠 마셔보자 라는 취지로 모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혀 어려운 상황이지만, 각자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커피 여행자들의 공감대가 은근히 끈끈해졌다.



상우님과 원님, 그리고 내가 함께 기획하고 비정기적으로 뭉치는 SMCC의 첫 번째 모임 장소는 바로 우리 집 마당이었다. 2019년 10월, 아침에도 쨍한 햇빛 때문에 다행히 춥지 않았다. 모임의 취지에 맞게 주최자는 커피를 각자 준비해오고, 게스트는 같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준비해오기로 했다.


암스테르담 @lotsixtyonecoffee 를 내가, 멜버른 @acoffee_melbourne 를 원님이, 서울 @imicoffeeroasters 를 상우님이. 그리고 직접 @ikawahome 으로 로스팅한 원두를 @coffeedriveseoul 니콜라스님이 추출한 커피를 맛봤다. 비슷하지만 다른 각자의 취향을 나누고, 오히려 드리기보다 받은 게 많았던 시간. 일요일 아침부터 동네 빵집, 좋아하는 빵집에서 챙겨 오신 훌륭한 퀄리티의 베이커리 까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니콜라스, 수연 두 분의 공간 '신촌 문화관' 오픈을 앞두고 진행한 모임이라 새롭게 기획 중인 공간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2층에는 커피 공간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호주 시드니에서 사랑받고 있는 싱글오 커피를 수입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렌다. 

 


게스트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어야 하는 특이한 모임인 SMCC는 앞으로도 원두 소진을 위해 열심히 우리 집 마당이던, 아니면 차고던 물을 끓일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계속 찾아갈 예정이다. 맛있는 원두를 같이 모여 즐겁게 내려 마시는 모임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편하게 참여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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