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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bin Park Jul 21. 2021

고양이 손님이 매일 아침 노크하는 집

똑똑, 당신 말고 추르 나오세요!

1. 고양이란 무엇인가


대학생 시절 홀로 자취를 하는 친척형 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모란시장 근처에 살던 형네 집에 놀러 가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자고 해서 신나는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세대 주택 원룸에 살던 형이 친히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와 나를 집까지 안내해주었다. 방문을 열자 지금껏 강아지만 키워봤던 나에게 다소 낯선 고양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 방문한 게 처음이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얼어붙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형은 태연하게 함께 사는 반려묘를 소개했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엉거주춤해가며 형 옆으로 다가가려 하자 온순할 것만 같았던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르며 나를 겁주기 시작했다. 내가 겁을 먹는 모습을 보니 형은 더 아이의 '질투'를 자극시켰다. 긴 막대 같은 장난감으로 점프를 시켰고, 나는 점프하는 아이의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을 보고 정말 무서워 도망가고 싶었다.


한참을 불안해하며 형과 함께 나가는 시간만 기다리다가 결국 식사 시간이 다가와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정대로라면 집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영화 보러 나갈 계획이었으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불안하고 견딜 수 없어 조금 더 일찍 나오게 되었다. 그날 형과 함께 본 영화는 신세계였는데, 날을 잘못 골랐던 것 같다. 신세계에서 나온 잔인한 장면에 오싹했지만,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사실 더 무서웠다. 


집에 다시 들어오니 어느덧 얌전해진 냥이가 형을 반겼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는 사이 밤이 찾아왔고 나는 그날 고양이가 야행성이라는 사실을 밤잠을 설치며 깨닫게 되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여나 틈이 생기지 않을까 몸을 구부려 옆으로 누워 잤다. 군대에서도 안 해본 '자는 척'을 냥이 때문에 했던 것 같다. 공포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 이후로 나는 집에 고양이를 키우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 게 약간의 트라우마 같이 자리 잡았다. 지금도 그 무시무시한 손톱과 발톱이 나는 두렵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좋아하는 고양이가 생겼다.


2. 보리와 함께한 사계절 


위 '정원 있는 집을 꿈꾸다 - 촌(村)스러운 집의 낭만' 4. 길냥이 보리의 집 에피소드에서 짧게 기록했던 것과 같이 나는 이삿날 만난 치즈 길냥이와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사실 2층 집에 거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현관 계단에 늘 사료를 준비해두고, 집을 지어주셔서 아이가 항상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집 마당에 자주 출몰하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걸 보고 '나를 내쫓으려고 그런 건가' 자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늘 유리창을 통해 우리 집을 바라보던 녀석, 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고 어딘지 모를 한 곳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날 좀 봐줘'. 겨울에는 늘 2층 집에서 만들어준 집에서 생활하다가 봄과 가을 그리고 여름에는 우리 집 마당을 무대 삼아 거닐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양이들이 좋아한다는 추르를 구입했고, 보리가 올 때를 기다리며 추르를 건넸다. 처음에는 약간의 경계를 하는가 싶더니 이미 추르 맛을 아는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맛을 보기 시작했다. 



추르를 홀짝홀짝 먹는 보리가 너무 귀여웠다. 나는 그 모습을 매일 보고 싶어 아침만 되면 추르를 들고 마당을 나섰다. 그러다 보니 눈을 뜨면 보리부터 찾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눈을 뜨고 창을 보는데 창문 틈 사이로 누워서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이날은 정말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어느 날 친한 집사 형이 길냥이들에게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고 내게 말을 해줬다. 그래서 사료만 줄게 아니라 물을 챙겨줘야 하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냥이 물통으로 할만한 게 집에 마땅히 없어 잘 안 쓰는 국 접시에 물을 한 바가지 뜨고 보리에게 건넸다. 몇 초가 지났을까. 부리나케 입을 벌려 작은 혀로 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정말 목이 말랐었구나.' 


어느 날은 한동안 보리가 찾아오지 않아서 걱정이 들던 때도 있다. 다행히 며칠 지나고 다시 찾아온 보리를 보자 무척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은근 정이 들었나 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보리가 야위워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겨울 지난봄에 부쩍 티가 날 정도로 몸이 안 좋아 보였다. 제리형이 만들어준 집과 사료, 물통도 있어서 먹는 게 문제일 거라 생각은 못했다. 주변 집사 지인분께 물어보니 털도 쭈뼛하고, 눈에 검은 반점 같은 게 보여 구내염 증상 같다고 진단을 내려주셨다. 여전히 방책이 없어 그냥 사료랑 물을 열심히 잘 먹게 도와줘야겠다 싶어 추르에 사료를 섞어 보리에게 건넸다. 어느 날은 입에 대지도 않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구내염이 있으면 길냥이가 사료를 씹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먹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무를 심었던 대형 화분 한편에 보리가 늘 누워 휴식을 취하던 곳에 보리를 발견하고 추르를 짜서 코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향해 눈을 깜빡하는 사이 눈 주변에 파리 두세 마리가 날아드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 정지 화면이 된 것 같았고, 눈물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보리가 많이 아팠겠구나.'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야위어가는 모습에 그날 제리형에게 SOS를 청했다. 냥 덫을 구해 다음날 포획하여 동물 병원에 데려가 보기로 결정했다. 구내염 약과 습식 사료를 운 좋게 후원받아 만발의 준비를 마친 날, 우리는 아침부터 보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찾아 헤맸다.  


3. 봄비 내리던 날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토요일 낮, 평소에 주로 가던 그 어느 곳에서도 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 야윈 몸이지만 2층 난간에 있는 실외기 뒤편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제리형을 보내드리고, 홀로 집에서 보리를 기다렸다. 비가 매섭게 부는 이 날씨에 보리는 과연 어디에 있을지 마음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후회스러웠다.


사실 빠른 진단과 약 처방을 했더라면 보리가 조금은 덜 아프고, 더 건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것도 모른 나는 짓궂게 추르와 사료를 섞어 보리에게 건넸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크게 휘몰아쳤다. 비 오는 토요일 하루가 보리와 함께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계절의 시간을 회상케 했다. 


일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하여 다시 마당 주변을 돌며 보리를 찾았다. 혹시 1층 어딘가 차 밑에 몸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닐지 싶어 밖을 나서 보기로 했다. (실제 보리는 인근 상가 주변 차량 밑에서 몸을 숨기곤 했었다.) 슬리퍼를 신고 밖을 나와 2층으로 내려갔는데 내가 이사올 때부터 있었던 보리의 집과 사료통이 안보였다. 그 순간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2층 아주머니는 아셨을까.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겠지 싶었다. 문을 두드리고 여쭙기는 어려워 일단 1층을 한참 둘러보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던 길 2층 집 아저씨를 마주쳤다. 


아저씨는 담담하게 엊그제 1층에서 누운 채로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씀해주셨다. 2020년 5월 8일 금요일, 봄비 내리던 날. 내가 하염없이 보리를 찾던 그날 이미 보리는 하늘나라로 갔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비를 맞으며 고통받지 않고, 오히려 비가 오기 전 생을 마감한 보리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저씨를 통해 접하게 된 보리의 소식. 


두 번의 사계절을 같이 보낼 줄 알았는데 여름과 가을은 보리 없이 홀로 이 마당을 지켜내기로 했다. 



'보리야. 우리 집에서 가장 처음으로 날 반겨줘서 고마워. 그리고 마당을 홀로 지키며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더 맛있고 몸에 좋은 것들을 주지 못했어서 미안해.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 너는 나에게 있어 가장 가장 귀여운 고양이 손님이자 친구야. 그곳에서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길 바랄게.'


4. 새로운 가족


보리가 떠난 지 이튿날, 1층 집 현관에 낯선 아이가 나타났다. 털 색깔은 회색이라기보다는 은색 빛이 돌았고, 몸집은 꽤 큰 아이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 마당의 사료를 가장 많이 먹고, 마당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되었다. 이 아이를 나는 '실버'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실버는 다른 길냥이와는 다르게 우리 집을 들어오려고 한 유일한 녀석이다. 사실 아직도 고양이가 다가오면 좀 겁이 난다. 그래서 추르를 주다가 갑자기 유리창을 통해 집을 들어오려고 해서 약간의 경계를 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 그래도 집으로 오는 건 내가 무서워서 미안해.)


저녁이 되면 짝꿍처럼 찾아오는 치즈와 고등어 아이들도 있다. 보통 길냥이들에게는 영역이 있는 곳은 다른 무리가 안 온다던데 이 트리오는 서로에게 양보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치즈가 사료를 다 먹으면, 고등어가 사료를 먹고 실버는 근처에서 구경을 한다. 밤에 이 트리오를 보는 날이면 무척 흥미롭다. 치즈와 고등어는 경계심이 높아서 나를 보면 피하는데 역시 추르 맛을 보고 난 뒤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내 눈치를 보고 그다음 행동을 이어 나간다. 보리를 위해 만든 공간이 다른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료가 줄어드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지만, 세 마리의 길냥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잠깐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뿌듯함이 그 속도를 이겨낸다. 


무더운 여름, 나와 함께 잘 지내보자. 실버, 치즈 그리고 고등어. 그리고 나의 보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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