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회사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된 책.
제목에서 느껴지듯 2050년, 지구가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재난과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장 도입부에서 바로 이 생각과 느낌은 착각이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히 '자연재해'에 대한 경고가 아닌 '대량학살'이 지금 벌어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책이었다.
한 번도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에 있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먼 미래 같았고, 내가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결국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향후 친환경 기술과 친환경 제품들이 자리해서 화두가 되는 이슈들을 하루아침에 잠재워줄 거라 내심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어쩌면 나 같은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읽기에는 매우 무서운 책이다. 책에서 표현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그 방안들이 저절로 실현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순히 무섭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공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걷잡을 수 없이 잘못 꿰진 매듭처럼 쉽게 풀기는 어려운 당면에 놓여있는 것만 같았다.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워 빠르게 완독 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책 읽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싶을 정도로 다음 소개될 이야기를 접하기가 두려웠다.
책 저자는 누구 하나만 악당으로 몰아갈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폭풍을 일으켰고 지금도 매일 그러고 있지만 오히려 무기력한 태도를 학습함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고 말한다. 어찌 이렇게 맞는 말만 하는지.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게 아닐까. 기후변화시대의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새로웠다. 자본주의, 종교를 넘어 정치, 소비 등의 키워드를 짚어냈다. 마지막으로는 절망 끝의 허무주의라는 소주제로 결코 '적당히'로는 거대한 규모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성'이라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저자의 표현에서는 어쩌면 내가 기대한 마지막 한 움큼의 온정도 없었다. 사실 그 한 움큼의 온정이 있기에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읽고 마땅한 반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눈물을 흘려라." 책을 덮고 뒷날개에 적힌 문구를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물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