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한 삶은 행복하다
(Monthly Intro) 작년 연말, 하루 온전히 한 해의 회고를 했다. (2021 연말 정산 회고)
한 해를 돌아보려니 하루로는 사실 매우 부족했다. 다행히 기록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기억의 편집이 크게 왜곡되지는 않았다. 그때 느낀 점은 하루, 한 주는 어렵더라도 한 달의 회고는 꼭 해볼 것. 글도 글이지만, 내 생각을 가지고 10개의 하이라이트를 꼭 뽑아내 볼 것. 아무래도 연말에 이 하이라이트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잘해왔든, 후회되든 어쨌든 내 성장 기록이니 차곡차곡 모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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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유독 음악을 많이 즐겼다. 수진 님의 앰비언트 신규 앨범 음감회, 이영훈 님의 '오늘의 안녕' 콘서트, 그리고 서촌 온그라운드 음에서 진행한 빌 에반스 음반 듣기. 마장뮤직앤픽쳐스 RE:FOLK 시리즈 LP 발매 기념 이아립 & 강아솔 & 이주영 공연까지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들이 유독 많았다.
1. #찬빈의브롬톤 의 시작
2015년, 50일간 떠난 #동유럽자전거여행 이후 자전거는 당분간 멀리해야겠다 생각했다. 하루에 80-100km를 달려야 했던 강행군 때문인지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는 게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다 1년 후 2016년 블리 작가님의 #시작은브롬톤 신간 북토크에서 브롬톤이라면, 다시 자전거를 즐겁게 타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2017년 훈호형의 아메리카 자전거 종주를 도움 준 산바다 스포츠 ‘캐논데일’ 덕분에 연이 된 승기 팀장님과 Be my B 운영진으로서 브롬톤(Brompton)을 주제로 세션을 기획하기도 했다. 세션 이후 더 매료되었고 매거진 B의 절판된 브롬톤 편을 중고로 어렵게 구매해 정독하기도 했다.
한동안 묻어둔 자전거 여행의 욕구가 최근 다녀온 캠핑 때문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텐트도 있겠다, 이제 “탈 것만 있으면 되겠다”라는 아주 단순한 의식의 흐름 같았다.
브롬톤 선배 은주 님 덕분에 알게 된 ‘패럴캣 사이클’에 마침 블랙 재고가 남아 긴 고민 없이 예약 후 오늘 드디어 첫 시승을 했다. 아직 다루는데 미숙해, 더욱 친해져야 하지만 벌써부터 이 친구와 함께 오래오래 여러 길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설렘이 더 크다.
#찬빈의브롬톤 10월에 제주를 한 바퀴 돌지, 동해안을 쭉 달려봐야지.
2. 크몽 디어프리매거진 9월호 "프리랜서에게도 인간관계가 필수적인 이유" 인터뷰
분야별 전문가 맞춤 플랫폼, 크몽에서 운영하는 <DEAR.FREE> 매거진 뉴스레터 Vo.11 인터뷰 제안을 주셨다. 인터뷰 주제는 '관계'였다. 그 어느 때보다 '연결'의 힘이 주목받고 있는 요즘,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 맺음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며 나의 답을 살포시 나누었다. (정답이 없는, 여전히 어려운 관계라는 단어)
3. Ambient Album <잎사귀와 나비의 음향> 수진 음감회
일산 닥터그루브 T.A.S에서 진행된 이 음감회는 특별히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이신 오정수 님이 패널로 함께 하셔서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각 곡마다 어떤 의미와 생각,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지 나누며 수진 님의 감상을 다채롭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앰비언트 음악은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줬는데 이 앨범은 산책도 하고, 산을 오르기고 하는 ‘역동적인’ 상상을 해주게 해 참 좋았다.
앞으로의 행보를 물을 때, 지금처럼 좋은 마음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해 주어진 창작 활동을 하겠다는 말에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고 계신 것 같아 더욱 인상 깊었다. 좋은 음악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던.. 당분간 이 앨범으로 오롯이 나만의 아침과 밤의 고요를 붙잡고 싶다.
4. 이영훈 <오늘의 안녕> 콘서트
특정 음악가의 모든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바로 이영훈 님이 나에게 그런 분. 오늘 단독 공연에서 선보인 9월 중 발매될 신곡을 제외하고 마음속으로 가사를,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건반에는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팬으로 응원하는 전진희 님이 함께해 주셔서 더욱 행복했다. 오늘 공연 제목처럼 Hope you’re well 밤을 선물 받았다. #일종의고백 #오늘의안녕
5. 추석 맞이, 부모님의 상경
(1)
#찬빈네집 최연소 손님 '남해' 처음으로 추석에 부모님이 남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 먹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내일 함께 라이딩할 생각에 들뜨신 아부지. 그리고 곯아떨어진 남해.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2)
아침을 먹다 LP를 틀어달라던 어머니. 무슨 음악이 좋을까 하다가 이문세 앨범이 좋겠다고 하신 아버지. 나는 그중에 1985년에 제작된 3집 앨범을 집어 들었다. 이문세와 작곡가 이영훈이 콤비를 이룬 첫 작품이자, 150만 장을 판매한 초유의 히트작이라 불리는 앨범이다. 1번 트랙 <할 말을 하지 못했죠> 다음 2번 트랙이 나오자 어머니가 말했다. 결혼 전, 아빠한테 불러준 곡이라고.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좋아했다고.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개울가 어딘가에서. 내가 이 앨범을 좋아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은 신기한 아침이었다. 우리 엄마 멋지네.
(3)
어머니와의 동네 산책, 아버지와의 한강 라이딩으로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식물 박사인 어머니 덕분에 ‘플라타너스 나무’를 알게 됐고 (이름을 터득한 뒤 계속 시선이 가게 되는-) 자전거 박사인 아버지 덕분에 자전거 ‘기본 정비’를 알게 됐다. 여전히 두 분에게 배울 것이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두 분에게는 선명한 내 어릴 적 이야기도. 다음 부모님의 #찬빈네집 서울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6. 서촌 온그라운드 음, 빌에반스 음감회
서촌 온그라운드 B1F 음. 오픈한 날 가보고 두 번째 방문한 날. 재즈 피아니스트 Bill Evans의 기일을 맞아 을유문화사 정상준 편집주간 님께서 빌 에반스 음악으로만 플레이해주신 목요일 밤. <재즈의 초상>을 읽은 뒤 접한 에반스의 음악은 그전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왔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멋진 공간에서 감상한 것도 좋았고, 편집주간 님께서 중간중간에 앨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빌 에반스> 역자 황덕호 칼럼니스트 님, 뉴욕 재즈의 성지라 불리는 Village Vanguard의 감상을 전해준 포토그래퍼님 등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까지 끌어내 주셔서 풍성한 시간이 됐다.
황홀한 밤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했던. 나에게 여전히 최고는 Waltz for Debby �
7.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앞, 카페 바 지느러미
역보다는 터미널을 좋아한다. 그중 고속 터미널보다 시외 터미널을 더 선호한다. 저마다의 이유,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덜 붐비고, 정겹고, 무엇보다 단축되는 시간보다 합리적인 가격 때문도 있을 거다.
고향 전주를 십수 년간 오갈 때에도 촌스러운 시외 터미널만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종 터미널 근처에 잠시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떠나온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교차하는 풍경을 감상하곤 한다. 간단히 목을 축여야 할 때 근처에 카페가 있다면 잠시 들러 낯선 공간에서 지나온 여정을 회고하기도 한다.
오늘 들린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안의 카페&바 ’ 지느러미‘는 피아노와 서핑보드가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들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카페와 바(bar)라는 콘셉트의 공간처럼. 누군가에게는 여정의 시작일 수 있는 이곳에서 잠시 후 탑승해야 할 버스를 앞에 두고 짧지만 여유, 사색을 누렸다. 지느러미. 결. 흐름. 시간. 일과 여행. 일상과 휴가. 서핑과 피아노. 아메리카노와 칵테일. 쓰고 싶은 글감이 생겨났다.
매력적인 공간을 만나면 이곳의 주인, 혹은 기획자가 궁금해진다.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우니까. 이런 공간들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에도 여정의 마무리를 이곳에서 하고 싶다.
8. 동료와 함께한 목포 2박 3일 여행
(1)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인 숙소에서 어제 일몰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채 일출을 봤다. 호스트님이 준비해주신 드립백으로 가볍게 커피를 내렸고, 스테이 서가에 꽂힌 많은 책 가운데 하루키의 책을 집어 들었다. 소개문만 봐도 가슴이 뛰네.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 부지런한 게으름을 부려가며 여행해야지. (여행 계획 안 짜는 즉흥러 3명이 있으니 시계 볼 일도 줄었다) ”여행이 나를 키웠다."고 말할 정도로 유달리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 그는 아무 계획도 없이 배낭 달랑 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 여행에서 그는 풍부한 정신적 고양과 판타지를 얻는다. 여행이 그에게 눈물 흘리게 하고 여행이 그에게 글을 쓰게 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나“, 이것이 하루키적 여행의 영원한 주제이다.
(2)
삼 형제 느낌으로 보낸 동고동락 2박 3일. 가영님과 근희 님의 워케이션 경험기에 이끌려 예약한 목포 에어비앤비, 동네산책 북스테이.
셋이 같이 밥도 해 먹고, 책도 읽고, 기타 치며 노래하고, 수다 떨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계획 없는 여유를 제대로 만끽한 여행. 아침에 읽은 <하루키의 여행법>처럼 이 여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어떤 변화를 주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넘치는 행복감은 덤으로!
(3)
숙소에 놓인 <The Book of Idle Pleasures> 책. 약 30가지의 한가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식이 소개됐다. 모처럼 접한 나에게 딱 맞는 취향의 책.
나뭇잎 줍기, 낮잠 자기. 노래하기. 빨래 널기. 벤치에 앉기. 레코드 정리하기. 물 수제비 하기. 춤추기. 구름 보기. 새 보기 등. (이중 몇 가지를 이번 여행해서 했던 것 같아 피식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일부는 촌스러운 #찬빈네집 에서도 하는,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가한 즐거움은 자기 관리, 자유, 독립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여름에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죄책감 없이 낮잠을 잘 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권리를 되찾는다. 한가한 쾌락은 또한 우리를 자연과 다시 연결할 수 있다. 게으름뱅이는 자연을 사랑한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치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옛날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무 자주, 오늘날을 살기 위한 아이디어를 위해 역사를 보는 사람은 낭만적이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꼬리표가 붙기도 하지만. 현대 생활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행복을 품읍시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by Tom Hodgkinson (2008)
9. 마장뮤직앤픽쳐스 <RE:FOLK> 시리즈 이아립, 강아솔, 이주영 공연
마장뮤직앤픽쳐스 <RE:FOLK> 시리즈 LP. 이아립, 강아솔, 이주영 세 아티스트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망설일 여유 없이 예약을 했다.
세 분의 주옥같은 음악을 목소리와 기타, 피아노 반주만으로 공간을 꽉 채워주셨다. 소중한 엘피 앨범 제작과 더불어 이런 멋진 공연을 기획해주신 마장뮤직앤픽쳐스 팀, 정말 감사드립니다!
10. 팔목클럽 2기 오프라인 밋업
8주간의 목요일 아침, 글쓰기 모임. 팔목클럽 2기 마지막 오프라인 밋업을 마무리로 8-9월 쓰기 모임을 마감. 10월은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지만, 어쩌면 집중해서 써야할 시기라 러닝 메이트가 필요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
혼자 잘 실천해 나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