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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 모임을 시작한 이유

핸드폰을 멀리해도 괜찮다는 감각

by Chanbin Park

2023년 8월, 전 직장에서 3년을 근속하며 리프레시 휴가로 2주의 시간을 선물 받았다. 대학생 이후 처음 누리는 방학 같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다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오랫동안 못 봤던 훈호 형을 만나기 위해 호주로 떠나기로 했다. 2017년, 커피가 좋아 혼자 떠났던 멜버른 이후 7년 만에 다시 가는 호주였다. 그때는 멜버른 한 곳만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멜버른에서 시작해 시드니를 거쳐 골드코스트로 이어지는 여정을 계획했다.


출발 전, 형이 “너라면 좋아할 숙소를 예약해 뒀다”는 말에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를 거야”라는 형의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다. 대체 뭐가 얼마나 다르다는 걸까. 훈호 형이 선택한 숙소는 Unyoked였다. 대도시 근교(차로 약 2~3시간 거리)에 위치한 오두막 스테이 브랜드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단절을 경험하며 자연 속에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특히 일부 숙소는 가는 길부터 통신이 되지 않아 구글 맵에서 위도와 경도를 입력해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형과 함께 지도를 다운로드해 가는 길은 작은 모험 같았다.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차에서 내려 신호를 주기도 하고, 소와 말이 거니는 농장을 지나며 속도를 늦춰 그들과 나란히 달리기도 했다. 비상 전화 위치를 확인하며 길을 따라갔고, 주차장으로 표시된 곳에 차를 세웠다. 거기서 두 개의 카트에 짐을 싣고 20분간 걸어 도착한 목적지, 오두막. 그곳에서의 1박 2일은 통신과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느낀 해방감과 행복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만끽했다. 불편함이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만족감을 느꼈다. 단절에서 온 지루함이 연결에서 오는 피로를 가뿐히 이겨냈다. 그동안 누군가 “나중에 뭐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공간을 만들고 싶어. 커피, 책, 음악, 그리고 숙박이 함께 있는 곳일 것 같아”라고 막연히 답하곤 했다. 하지만 그 공간의 목적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 여행에서 나는 단절을 통한 해방감이라는 공간의 목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서울 근교에도 Unyoked와 똑같은 환경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단절된 상태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물론 지금도 이런 숙소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했던 그 시간의 감각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거라 믿었다.


@chanbinpark Unyoked Rica 2023
@chanbinpark Unyoked Rica 2023
@chanbinpark Unyoked Rica 2023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 감각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지만, 일상은 금방 나를 삼켰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니 그때의 생각과 다짐은 점차 막연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시간 나면 구체화해보자”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덮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 릴스에 낯선 영상 하나가 떴다. 핸드폰 없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뜨개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렸다. 또 어떤 이는 상대와 눈을 맞추며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보았다. 마치 내가 찾던, 내가 그리워하던, 내가 짓고 싶었던 미소 같았다.


@theoffline_club Amsterdam/Netherlands


암스테르담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커뮤니티, 오프라인 클럽. 그들이 서울에 공간을 열어주길 바라며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호스트를 모집한다는 공고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나도 답변은 오지 않았다. 유럽에서 시작한 그들이 아시아까지 확장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 장면에 이토록 끌리는 걸까.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근교의 오두막 스테이만으로는 나의 일상이 180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의심이 있었다. 그래서 도시에서 단절을 연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도시에서는 단절을 연습하고, 근교에서는 진정한 단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도시에서 참여한 사람들 한정으로 오두막 스테이를 운영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공간이 지향하는 문화가 더 가치롭다고 느낄 테니까. 그렇게 디지털 디톡스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은 오프그리데이(Offgriday). 이 커뮤니티는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거나 규모를 키울 생각이 없다.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공감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여정을 만들어가고 싶다. 모임의 시작은 늘 Unyoked와 The Offline Club을 소개하며, 그들에게 받은 영감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롯이 나를 감각할 수 있는 안전함이 보장되는 시간, 그것이 오프그리데이가 추구하는 전부다.


@offgriday 241123_솔트 사직
@offgriday 250111_브브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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