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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스 Nov 04. 2020

아직 다 끝나지는 않은 달

올 해 아무것도 못한 것 같은 당신에게

'아직 다 끝나지는 않은 달'

어느 인디언 부족이 11월을 부르는 말입니다.


느닷없이 힘들고 정신없이 슬펐던 2020년. 뭘 했다고 벌써 한 해가 가려는가 싶어 쓸쓸해 집니다. 유독 마지막 달 보다, 마지막을 앞둔 11월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인디언 부족은 그 마음을 일찍 알아서 11월을 '아직 다 끝나지는 않은 달'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시작하기엔 이도저도 마땅치 않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지는 않은 때. 11월을 달리 부르는 이름 하나로 쓸쓸했던 끝자락 뭔가 용기 한 줌 생긴 듯 합니다.


돌이켜 보면 2020년은 그 어느때보다 부단한 시간이었습니다. 무언갈 하지 않으려, 하고 싶은 걸 참으려, 멈추거나 바꾸려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 정신없었던 시간들에 한 단락 매듭짓는 게 필요할 겁니다. 그 지난한 시간을 지나온 서로에게, 제대로 칭찬이나 위로를 하는 시간도 있어야 겠고, 이렇게라도 지금을 지켜낸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온 맘다해 전할 수도 있어야 겠습니다. 슬픈 일이 있었다면, 늦기 전에 꼭 소리내어 울어보기도 해야합니다.


 그런 시간을 잘 매듭지어야 그 굴곡을 의지해서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각자만의 매듭을 지어볼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 다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시 하나를 드리기 위해 서두가 길었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여러 매듭을 마주하고 있을 모두에게 정호승의 매듭을 보냅니다.



매듭


정호승


나는 이제 매듭을 풀려고 기도하지 않는다

매듭의 까닭을 밝히려고 뛰어다니지 않는다

외로움의 매듭도 두려움의 매듭도 그대로 둔다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단단히 매듭질 때가 많아

혼자 울어야 할 때가 많았다


매듭은 풀리면 이미 매듭이 아니다

매듭은 풀리기 위해서나

누가 풀기 위해서 매듭져 있는 게 아니다

단단히 매듭져 있기 위해서 매듭져 있어

매듭을 더 단단히 묶고

기다림의 길을 멀리 떠날 때도 있었다


길가엔 매듭이 꽃으로 피어날 때도 있었다

매듭의 뿌리가 슬며시 흙으로 뻗어나가

산수유도 산매화도 피어나

가끔 매듭의 열매를 먹고 길가에 잠들 때도 있었다


나는 이제 매듭으로 십자가를 만들 줄도 안다

한때는 매듭으로 바람을 만들어 바람에 날려갔으나

십자가를 만들어 십자가에 매달릴 줄도 안다

십자가에 매달린 나를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매듭의 힘에 감사할 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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