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해

이게 대체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by 젼정

콘셉트가 없는 게 콘셉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애매한 카테고리에 나를 넣어보려고 했더니 이미 '애매함'을 내세워 쓴 글도 있다. 도무지 어떤 걸 내세워서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에 또 봉착했다. 남들은 제 갈길 잘 찾아가는데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시작은 이렇지 않았다.


다시 잘 생각해봐!

너도 콘셉트가 있을 거야!

어머나, 있는 거 같아.

세상에, 없어!


그럼 영영 여기 남아 있어야 되는 건가.


참 오싹한 이야기다.


얼마 전 브런치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나도 그 프로젝트에 브런치북을 당당히 응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에 내 이름이 없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실망감이 없을 정도로 대충 써서 낸 글은 아니다. 다만 '밤에 읽는 라디오'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나를 위해 한 번은 써야 했던 글이었다. 그저 편하게 읽고, 잊혀도 좋을 글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럼 왜 냈냐고? 혹시 모르니까.


컨셉진에서 진행한 '100일 글쓰기'를 통해 도전한 출판 지원작 발표 때는 이렇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지만, 나는 내가 꽤 높은 확률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이 오만함을 어찌하오리까.


거기에서 떨어지고 나니,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한동안 힘들었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그런 기회가 다시는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지금은 아니다.


떨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그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돼서 글을 쓰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그때 썼던 글들이 책으로 나온다면 어땠을까? 그건 오싹한 이야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형편없는 걸 넘어서서 후져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글들을 다 지우지는 않았다. 블로그에 보란 듯이 걸려있다. 내가 쓴 글은 맞으니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사실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일단 쓰면, 쓰게 되고, 쓸 수 있다'는 조언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말을 믿고, 나는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뭐라도 쓴다. 대단한 글을 쓰게 된 건 아니지만 이전보다 나은 글을 쓰게 되었다. 브런치를 통해 다른 사람의 글도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인기가 많아 보이는 작가의 글이 다 대단하지는 않다. 취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내 글도 누군가에게는 읽을만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내 갈 길을 가야 한다. 어설프게 뭘 따라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힘을 빼고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업작가가 되고 싶고, 책을 내고 싶지만, 분명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낼 책이 어떤 책이 될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제 조금 쓸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처럼 온 힘을 다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게 쓰면, 계속 해내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퇴고의 과정에도 힘을 빼기로 했다. 이곳에 모든 힘을 쏟지는 않기로 했다.(이렇게 써놓고 사실은 꽤 열심히 하고 있다. 어제 시험공부 안 했다고 엄살을 떨면서 백 점을 맞는 아이가가 떠오르는 건 왜지? 난 백 점이 아니라서 해당 없지만.)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쓰려한다.

실제로 꽤 많은 에너지를 쏟아 쓴 글보다 편하게 쓴 글에 더 좋은 반응이 있는 경우도 많다. 엄청나게 공들여 쓴 글을 일주일에 한 번 올리는 것보다 일상에서 느끼는 글들을 읽기 쉽게 고쳐 주 2회 이상 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여전히 콘셉트를 잡지 못하고, 망망대해 가운데서 파도가 치는 대로 떠다니는 배처럼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목적지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긴 채로. 시간이 필요하다.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의 고달픔을 누가 알아줄까. 내 글이 수상작이 아님에 안도하는 나의 보잘것없는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브런치에 글을 50개 넘게 올려놓고,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는 내가 나는 갑자기 오싹하다. 더 오싹한 건 이대로 성실히, 더 잘 쓸 자신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이게 대체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오싹하다, 오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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