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순간 느끼는 '무엇'
대단히 멋진 글을 쓸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알지만, 알고 있지만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커져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욕심이 생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시시해진다.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진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무엇도 쓸 수 없게 된다.
슬럼프. 권태.
이런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애매하다.
무엇이 되기라도 했어야지.
그런 단어를 쓸 정도로 내가 무엇이 된 적이 있었나?
무엇이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는 수 없이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얼마 전 드라마 '인간실격'에 나온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부정(전도연)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됐어.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부지."
- 드라마 '인간실격' 2회 중에서-
그 순간 내가 품고 있는 불안감을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써 괜찮은 척 키보드를 두드리며 용기 내어 글을 쓰는 것도 나지만, 이렇게 해도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은, 그래, 외롭다. 이곳에서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작가다. 그걸로 나는 무엇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아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부정(전도연)이 아버지(박인환)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일렁거렸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망망대해 위에서 우리의 삶은 파도에 떠밀리듯 어딘가로 가고 있다. 정신 차리고 어디인지 살피려 해도 주어진 이정표가 없으니 낯설기만 하다. 삶의 이정표는 각자 그려야 한다. 그 이정표를 누군가와 함께 그린다 해도 결국 미세하게 목적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세밀하게 이정표를 그렸다고 해서 정확히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강재(류준열)의 독백 또한 부정(전도연)과 같다.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똑같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드라마 '인간실격' 2회 중에서 -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아니,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 심오한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하기가 참 어렵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툭 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가는 무엇이 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노력'의 차이라고 말하기는 싫다. 삶은 애초부터 불공평하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보이지 않는 계급을 보이게 나눈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어디에서든 실컷 앉아 울고 싶지만 그 마음을 감춘 채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외줄 타기에 우리는 홀로 서 있다. 불안하지 않은 척, 애써 태연한 척, 외줄에 몸을 맡긴다. 흔들리는 건 언제나 나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나로 살고 싶다. 그 어떤 상황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하여도 나는 내가 되고 싶다. 하는 수 없이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딴 데 가 있는 마음을 불러 본다.
이리 와, 여기 있어.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 같을 때마다, 주저앉아 그런 기분에 계속 젖기 있기보다는 일단 쓴다. 쓰는 순간 느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그린 이정표를 들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무수히 파도에 밀리고, 바람에 흔들린다 해도,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되고 싶은 '무엇'은 목적지가 아닌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